‘발레 전설’ 롤랑 프티를 만난다

입력 2013-10-02 17:23 수정 2013-10-02 23:02


‘20세기 발레의 전설’로 불리는 프랑스 천재 안무가 롤랑 프티(Roland Petit·1924∼2011). 정통 발레보다는 탭댄스나 재즈에 열광하던 그는 16세에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해 무용수로 인정받았다. 안무에도 재능이 있던 프티는 1942년 안무 데뷔작 ‘점핑’을 선보였고, 2년 뒤 발레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안무가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상실과 허무의 늪에 빠진 인간 군상을 강렬하게 표현한 작품을 발표하며 19세기 러시아로 넘어간 발레 주도권을 다시 프랑스로 가져오게 만들었다.

2010년 7월 국립발레단에 의해 국내에 초연되며 호평을 이끌었던 그의 작품 3편이 3년 만에 다시 한국 무대에 오른다. 고전 발레도 아니며, 완전한 모던 발레라고 하기도 어려운 그의 작품들은 클래식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기본기에 현대적이고 과감한 표현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연기하기 어려운 레퍼토리. 곡예에 가까운 동작과 과감한 애정표현,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다이내믹하게 전개되는 안무가 특징이다.

‘아를르의 여인’은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1840∼1897)의 동명소설을 발레로 만든 것.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표현하는 애틋하면서도 비장한 춤사위가 비제의 음악과 어우러져 관객을 사로잡는다. 프랑스 프로방스 전통 의상과 반 고흐가 사랑했던 아를르 지방의 밀밭 풍경이 무대에 그대로 옮겨진다. 특히 사랑에 대한 번민으로 괴로워하던 무용수가 격정에 넘쳐 죽음을 택하는 마지막 부분은 발레리노의 모든 에너지가 분출되는 명장면이다. 35분.

프티가 22세에 만든 ‘젊은이와 죽음’은 영화 ‘백야’에도 나왔던 유명한 발레.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7∼8분가량 나오는 강렬한 춤이 바로 이 작품이다. 1946년 세계 대전이 끝난 무거운 사회 분위기가 반영돼 있다. 바흐의 웅장하고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음악 ‘파사칼리아’를 배경으로 팜므파탈의 압박에 괴로워하는 젊은이의 모습이 충격적으로 그려진다. 20분.

또 하나의 작품은 ‘카르멘’이다. 1949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자 선정적이었던 의상과 안무, 도발적인 헤어스타일로 큰 반향을 몰고 온 작품. 수많은 발레리나들이 가장 도전하고 싶어 하는 역할로 꼽힌다. 45분.

사랑에 빠진 젊은이들의 파멸을 다루고 있는 세 작품 모두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보통 유명 안무가의 작품은 난해하기 마련인데 프티의 작품은 명료하고 이해가 쉽다. 이동훈 정영재 김지영 김리회 등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들이 총출동한다. 특히 파리오페라발레단에 동양인 최초로 입단했던 발레리노 김용걸이 ‘젊은이와 죽음’의 주역을 맡아 눈길을 끈다. 11∼1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