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소리 설레는 추억의 고향역… 코스모스축제 열리는 하동 북천역
입력 2013-10-02 17:19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이쁜이 꽃뿐이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 달려라 고향열차 설레는 가슴안고/ 눈 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
나훈아의 ‘고향역’이 무시로 흘러나오는 경남 하동의 북천역. 가을로 접어드니 메밀꽃 향기와 색색의 코스모스 물결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북천 코스모스역’으로도 불리는 북천역은 하동역과 진주역 사이에 위치한 경전선의 작은 시골역. 평소에는 하루 평균 20여명의 승객이 역을 이용하지만 코스모스가 필 때는 수천 명이 북천역을 찾는다.
승강장 일부와 기찻길을 제외한 플랫폼이 온통 코스모스와 메밀꽃으로 뒤덮여 있다. 그래서 북천역은 추억을 찾아 나선 가을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 어른 가슴 높이로 자란 코스모스와 녹슨 기찻길, 그리고 아담한 역사와 장난감처럼 앙증맞은 3량짜리 꼬마열차가 빛바랜 앨범 속의 사진처럼 정겹다.
쪽빛 가을 하늘을 향해 미소 짓는 북천역 코스모스는 하루 14차례 무궁화호 열차가 역사로 진입할 때마다 어지럽게 춤을 춘다. 멀리 산모롱이를 돌아 나오는 기차가 모습을 드러내고 녹슨 철길이 찌렁찌렁 금속성 마찰음을 내면 화답이라도 하듯 코스모스가 가늘게 떨기 시작한다. 이어 기차가 역사로 진입하면 색색의 물감을 흩뿌린 듯 코스모스 꽃잎이 자진모리 장단으로 춤을 춘다. 관광객들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녹슨 철길을 배경으로 추억을 담느라 연신 셔터를 누른다.
코스모스에 둘러싸인 북천역은 이명마을 입구에서 볼 때 더욱 낭만적이다. 철길 건널목을 지나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황금들판과 코스모스 단지 너머로 북천역과 경전선 철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기적을 울리며 달리는 기차가 마치 코스모스 밭을 달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으로 2016년 경전선 복선화 사업이 완료되면 추억 속으로 사라질 풍경들이다.
북천역을 비롯해 하동 직전마을과 이명마을이 코스모스와 메밀꽃으로 단장한 때는 지난 2006년. 주민들이 쌀 수급정책의 하나로 실시된 경관직불제 사업에 참여하면서 북천역을 중심으로 논과 밭에 코스모스와 메밀을 심었다. 2007년부터는 ‘하동 북천 코스모스·메밀꽃 축제’가 곁들여지면서 코스모스와 메밀밭 면적이 40㏊로 늘어났다.
코스모스와 메밀꽃은 북천역과 북천초등학교 주변, 이병주문학관 주변, 그리고 축제장이 위치한 직전마을에서 군락을 이룬다. 북천천이 흐르는 북천초등학교 주변은 분홍색 코스모스밭과 순백의 메밀밭, 그리고 황금색 들판이 어우러져 색색의 띠로 형성된 거대한 색채미술을 보는 듯하다.
이병주문학관이 위치한 이명마을은 계단식 논을 코스모스 단지로 조성한 것이 특징.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말로 유명한 이병주(1921∼1992)는 하동 북천면이 고향으로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해 80여권의 작품을 남긴 작가. 전시관에는 한복을 입은 생전의 단아한 모습과 작품 및 명문장들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코스모스와 메밀꽃이 바둑판처럼 드넓게 펼쳐지는 곳은 직전마을 일대. 북천천과 경전선을 축으로 분홍색과 하얀색 도화지를 펼쳐놓은 듯 코스모스 밭과 메밀 밭이 색깔을 달리한다. 축제장에는 당나귀가 끄는 수레를 비롯해 오리배 타기, 미꾸라지 잡기, 고구마 캐기, 밤 줍기 등 다채로운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다. 수세미를 비롯해 빨강 초록 노랑 보라 등 형형색색 조롱박이 터널을 이룬 조롱박터널도 동심을 자극한다.
이달 6일까지 계속되는 축제를 즐기려면 순천, 진주, 마산역 등에서 북천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이용하는 게 편리하다(북천역 055-883-7788).
하동=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