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史를 바꾼 한국교회史 20장면] 엑스플로 74·민족복음화 대성회 등 복음의 열기
입력 2013-10-02 17:12
‘빌리 그레이엄 목사 한국 전도대회’를 시발점으로 1970∼80년대 민족복음화 운동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 전도대회 이후 잇달아 열린 대규모 집회는 한국교회 부흥의 마중물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레이엄 목사의 전도대회가 열렸던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1974년 ‘엑스플로 74’가 열렸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 대표 고(故) 김준곤 목사가 주도한 엑스플로 74는 여의도광장에서 5박6일간 함께 먹고 자며 전도훈련을 하는 집회였다. 첫날 집회에 136만여명이 참석했고 연인원 650여만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목사는 “젊은이들이 예수의 꿈을 꾸고 인류구원의 환상을 보며 한 손에는 복음을, 다른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는 거룩한 민족이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며 부흥의 불길을 당겼다.
‘민족복음화 대성회’는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 70주년을 기념해 1977년 여의도광장에서 열렸다. 이 집회는 외국선교단체 등 외부의 도움이 아니라 부흥사로 이름을 알린 신현균 목사를 비롯한 국내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준비됐다. 주제는 ‘민족복음화를 위하여, 한국인에 의해서, 오직 성령으로’였다. 이 집회에서 처음으로 평양대부흥운동을 한국교회 부흥 및 성령 운동의 역사적 사건으로 기념했다.
1980년 ‘세계복음화대성회’, 1984년 ‘한국 기독교 100주년 선교대회’ 등 80년대에도 대규모 기독집회의 열기는 이어졌다. 특히 80년대 집회는 교회의 부흥뿐 아니라 열방으로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지상 명령을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임희국 장신대 교수는 “6·25전쟁으로 보릿고개를 겪은 뒤 가난에서 벗어나자는 시대적 소망과 맞물려 대중 전도집회는 큰 호응을 얻었고 이후 한국 교회뿐 아니라 경제도 크게 성장했다”며 “다만 산업화에 따른 도농 양극화 등으로 농촌교회가 쇠퇴한 것은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