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 과외’ 단물만 빼먹고 연락 두절… 대학생 과외교사 울리는 얌체 학부모

입력 2013-10-02 05:29


지난주 한 인터넷 과외사이트를 통해 영어 과외를 소개받은 연세대 3학년 이모(22·여)씨는 과외 시작 전 의례적으로 이뤄지는 시범과외에 나섰다가 불쾌한 일을 당했다. 학부모의 요구대로 중3 아이의 영어교과서 네 단원 강의는 물론 관련 영어문제집 3∼4권을 정리해 ‘중간고사 대비 자료집’까지 만들어가며 시범과외에 임했지만, 시험이 끝나자 “아무래도 우리 아이와 안 맞는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기 때문. 이씨는 “처음에는 사는 지역과 학과, 선호하는 스타일, 성별까지 ‘우리 아이와 딱’이라며 고용할 것처럼 하다가 아이 중간고사가 끝나니 태도를 바꾸더라”며 “밤까지 새워가며 시범과외 준비를 했던 노력과 차비조차 아깝다”고 호소했다.

중간고사 시즌을 맞아 과외 시작 전 일종의 ‘면접’처럼 이뤄지는 무료 시범과외를 자녀의 중간고사 대비용으로 악용하는 ‘얌체’ 학부모들 탓에 힘없는 대학생들만 한숨짓고 있다. 지인을 통한 ‘면 대 면’ 소개가 아닌 인터넷 중개사이트 등을 통한 과외 중개의 경우 학부모들이 신원 확인이나 신뢰 문제를 이유로 시범과외를 1∼2회 정도 요구하는 것이 대부분. 하지만 ‘무료’라는 조건이 달린 시범과외의 허점을 이용해 시범과외를 자녀의 중간고사나 특정 시험 대비용으로 활용한 뒤 과외를 중단하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어 과외 공급자인 대학생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학부모들의 수법은 시범과외를 나온 여러 명의 대학생 교사들을 요일별로 배정한 뒤 한 과목의 단원을 분배하거나 심한 경우 여러 과목을 나눠 중간고사 대비를 시키는 식이다.

이화여대 2학년 정모(21·여)씨는 “한번은 수학 과외를 구하는 학부모가 시범과외로 사회와 도덕 과목을 요구해 이상하다 했는데 역시나 시험이 끝나니 ‘연락두절’이더라”며 “아르바이트 자리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인 대학생들의 단물만 쫙 빨아먹고 버리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양대 김모(25)씨는 “이런 학부모들의 경우 ‘한 달에 100만원’ 등 다른 과외들보다 비싼 과외비를 제시하는 게 특징”이라며 “자녀의 성적 향상을 위해 당장 돈이 궁한 대학생들을 비싼 과외비를 미끼로 유인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피해를 보는 건 과외를 구하고자 수수료까지 내며 인터넷 중개사이트에 가입한 대학생뿐이다. 과외 수요자인 학부모들의 경우 사이트 가입비가 없지만, 대학생들은 과외 알선 대가로 수수료 명목의 가입비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정씨는 “대형 과외 중개사이트의 경우 2개월 가입비는 2만5000∼3만원으로 기간이 지나면 가입 자격이 박탈된다”며 “정식 과외를 구하지 못하고 시범과외에만 품을 들이다가 2개월이 지날 경우 손해는 고스란히 과외시장에서 약자인 대학생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대형 인터넷 과외 중개사이트 G업체의 관계자는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서 이런 민원이 자주 제기돼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만, 중개업체로서 1대 1로 진행되는 대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계약에 관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시범과외 후 정식과외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가입비 구제 등의 방안은 마련해놓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