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 공중분해 가속화] ‘불완전판매’ 배상 받기, 막막한 투자자들
입력 2013-10-01 18:28
정모(68)씨는 2006년 12월 한 외국계 은행 부지점장의 권유로 삼성전자, 애플, 스타벅스, 미쓰비시, 미쓰이스미토모 보통주를 기초 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펀드(ELF)에 14억9100만원을 투자했다. 분기마다 연 14.5%의 이율을 제공하고, 최초 기준일로부터 2년 동안 기초자산들이 기준 주가의 55% 미만으로 하락하지 않으면 원금을 보장하는 파생상품이었다. 정씨가 재개발 보상금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찾아온 부지점장은 “삼성전자가 망하지 않는 이상 원금은 보장된다”고 부추겼다. ‘개인투자성향분석표’에는 실제로는 보수적인 정씨의 투자성향을 공격적인 것으로 임의 작성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1월 스타벅스의 주가는 최초 기준주가였던 35.75 달러의 55%에 못 미치는 19.31달러로 하락했다. 이 주가는 정씨의 ELF가 만기에 이를 때까지 회복되지 못했다. 결국 정씨의 ELF는 75.5%의 손실을 입었고, 1년차 배당금을 감안하고서도 원금의 61%를 잃게 됐다.
정씨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부산지법도 “안정성과 수익성만 앞세우고 투자 위험성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은행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로 정씨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9억원을 잃은 정씨에게 돌아온 금액은 3억2000만원 정도였다. 재판부는 정씨에게 “투자하는 신탁상품의 손익구조와 투자위험을 미리 파악해 신중하게 투자하지 않았다”며 원고의 책임도 인정, 은행 측의 손해배상 책임을 35%로 제한했다.
동양그룹 회사채와 CP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이 불완전판매를 호소하며 집단 소송을 준비 중이지만, 이들이 돈을 돌려받는 과정은 정씨의 경우처럼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1일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투자자가 상품설명서에 기명날인을 한 경우 불완전판매에 따른 손해배상액은 대체로 35% 안팎에서 결정되고 있다. 금융회사 직원이 구두로 안내한 내용만으로는 금융회사의 부당권유행위를 입증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씨는 “부지점장이 원금보장을 거듭 강조했다”고 항변했지만, 부산지법은 “증언만으로 적극적인 기망행위를 인정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행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은 금융회사가 투자자의 투자성향을 파악해 부적합한 금융상품을 권유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또 금융상품에 대해 투자 위험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불완전판매가 시빗거리가 되는 일은 많고, 피해자들의 생각과 달리 금융회사의 책임 입증과 손해액 구제는 쉽지 않다. 한 변호사는 “상품 설명의 불충분, 금융회사의 고의성을 투자자가 모두 입증해야 하는데, ‘투자자가 알 수 있도록 설명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주관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불완전판매 시비가 많음을 아는 일부 투자자는 신중해졌다. 만일을 위해 상품 가입 단계에서부터 금융회사 직원이 안내하는 말들을 전부 녹취하는 투자자가 많아진 것이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최근에는 녹취 문화가 많아져서 작은 상품을 하나 가입하는 데도 한 시간이 걸리곤 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투자자가 아무리 설명을 충분하게 듣지 못했다고 주장하더라도, 투자자가 자필로 기재하고 날인까지 했다면 유리한 결과를 얻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국투자자보호재단은 “기명날인은 법률적으로 강한 효력을 지니고 있다”며 “자필서명은 두려운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