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청춘들 ‘꿈’ 속으로… 현실도피 ‘자각몽’ 대유행

입력 2013-10-02 05:21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 ‘자각몽’ 열풍이 불고 있다. 자각몽이란 ‘자신이 꿈속에 있다고 느끼면서 꿈을 꾸는 상태’를 말한다. 자각몽 상태에서는 꿈의 상황이나 환경을 마음대로 조절해 자신의 욕구를 실현할 수 있다. 때문에 암울한 현실에 좌절한 젊은이들이 자각몽을 현실도피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자각몽에 의존하면 부작용이 생긴다고 경고했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 신모(25)씨는 취업 걱정으로 수개월째 밤잠을 설쳤다. 숙면을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던 신씨는 자각몽에 관한 글을 접했다. ‘꿈에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모두 이룰 수 있다’는 설명에 신씨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는 인터넷 게시판에서 자각몽 조절 방법을 검색해 매일 아침 꿈 내용을 기록하는 ‘꿈 일기’도 작성했다. 어느 날 신씨는 자주 찾던 신사동 거리를 걷는 꿈을 꾸었다. 꿈이었지만 감각은 생생했다. 신씨는 “꿈속에서나마 미래에 대한 불안과 우울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며 “자각몽을 자주, 오래 꾸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넷의 자각몽 관련 커뮤니티에는 신씨처럼 꿈에서나마 자유를 만끽하려는 젊은이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유명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루시드 드림’(자각몽의 영문 명칭) 카페에는 10만여명의 회원들이 가입해 활동 중이다. 회원들은 인터넷 카페에서 자각몽 방법을 배우고, 자각몽 성공 체험담도 꾸준히 올린다.

자각몽 관련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등장했다. 꿈 일기를 작성할 수 있도록 알람이 달린 메모장 앱, 잠이 든 상태에서 의식만 깨운다는 특수 알람 앱 등이 젊은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 중에는 10만건 이상의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한 인기 앱도 있다.

젊은이들이 자각몽에 열광하는 까닭은 힘든 현실과 삶의 고통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서울대병원 정신과 이유진 교수는 “저성장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은 취업과 결혼 등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고, 현실을 도피하려는 성향을 보이기 쉽다”며 “자각몽은 근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숨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기 때문에 한번 경험한 젊은이들은 자각몽에 빠져들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희대 이택광 교수는 “자각몽 유행은 자아를 실현하고 현실을 바꿀 가능성을 차단당한 젊은이들이 상상적으로 자아를 강화하려는 시도로 본다”고 분석했다.

자각몽의 부작용도 지적된다. 무리한 자각몽 시도로 피곤한 상태가 계속되거나, 자각몽에 몰입하다가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자각몽 속에서 지나친 일탈행위를 하다 정서불안에 빠질 위험도 크다. 인터넷에서는 ‘꿈에서 사람들에게 총을 난사했다’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등의 체험담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이유진 교수는 “자각몽은 일부 외상후스트레스 증후군이나 악몽 환자에게 제한적으로 사용되던 치료법”이라며 “일반인들이 자각몽을 치료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