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진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 계열사 8% 그쳐

입력 2013-10-01 17:47 수정 2013-10-02 00:36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진두지휘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칼날이 무뎌졌다. 현대글로비스와 삼성에버랜드 등 논란이 됐던 계열사들이 규제 대상에 포함됐지만 규제 범위는 대상 계열사의 약 8%에 그치게 됐다. 국회 논의를 거치면서 규제 기준이 대폭 완화돼 경제민주화가 동력을 잃고 있는 것이다.

공정위는 총수일가 지분율이 상장사 30%, 비상장사 20% 이상인 계열사에 일감 몰아주기를 하면 이를 규제하도록 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1일 입법예고했다. 총수가 존재하는 대기업(자산 5조원 이상) 43개의 계열사 1519개(4월 1일 기준) 가운데 208개사(상장사 30개, 비상장사 178개)가 대상이다.

신영선 공정위 경쟁정책국장은 브리핑에서 “8월 기준 내부거래현황 분석결과 상장사는 지분율 30%, 비상장사는 20%를 기준으로 내부거래 비중이 급격히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로 공정위 규제를 받는 계열사는 대폭 줄어든다. 공정위가 시행령에서 예외 기준을 설정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인 ‘합리적 고려나 비교과정 없는 상당한 규모의 거래’와 관련해 내부거래 비중이 거래상대방 연 매출액의 12% 미만이고 내부거래액이 200억원 미만이면 규제하지 않기로 했다. 이 경우 계열사 86곳이 예외 적용을 받아 규제 대상 계열사가 208개에서 122개로 쪼그라든다. 당초 공정위는 ‘거래상대방 연 매출액 10% 미만이고 내부거래액 50억원 미만’을 규제의 ‘안전지대’로 검토했지만 내부거래 기준을 완화하라는 여당의 요구를 수용했다.

공정위는 또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에 대해서도 규제 기준을 완화했다. 당초 예외 기준은 정상 가격과의 차이가 7% 미만이고 연간 거래총액이 50억원 미만이었다. 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거래총액 기준이 200억원 미만(자금·자산 등은 50억원 미만)으로 완화됐다.

10대 그룹 가운데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는 계열사는 GS가 13개로 가장 많고 현대차(10개), SK(4개), 한진(4개), 한화(4개), 삼성(3개) 순이다. 롯데는 지분율을 기준으로 하면 4개사가 해당되지만 모두 예외 적용을 받는다. 삼성에버랜드(총수일가 지분율 46.02%), 삼성석유화학(33.19%), 현대이노션(100%), 현대글로비스(43.39%) 등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일으켰던 기업들이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이번 시행령은 지난 7월 공정거래법 개정 당시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차원에서 ‘현저히 유리한 조건’을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바꾼 이후 구체적 범위를 명시한 것이다. 다만 향후 법 시행 과정에서 각종 예외 사유가 적용되면 실제 규제대상은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공정위가 기업들이 일감 몰아주기를 할 때도 비용절감 등의 효율성 증대가 명백한 경우, 기술·정보 유출 우려로 보안이 요구되는 경우, 해킹 등의 이유로 불가피한 경우에는 각각 규제 대상에서 뺏기 때문이다.

세종=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