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잉주 총통 사퇴요구 확산… 대만 혼돈

입력 2013-10-01 17:34


대만 정국이 갈수록 혼미한 국면에 빠져들고 있다. 야당인 민진당은 지난 30일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으면 탄핵 절차에 돌입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대만 국민들은 마침내 마 총통의 사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기에 이르렀다. 마 총통의 지지율은 대만 역사상 처음으로 9.2%를 기록했다.

이 같은 정치적 혼란은 마 총통과 왕진핑(王金平) 입법원장(국회의장) 간 갈등에서 비롯됐다. 왕 입법원장이 지난 6월 기업인 출신 야당 입법위원(국회의원)의 횡령사건 재판을 놓고 법무부장(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검찰로 하여금 항소하지 못하도록 부탁한 행위가 드러난 게 문제였다.

그 뒤 국민당은 규율위원회를 소집해 “당규를 엄중히 위반했다”며 왕 원장의 당적을 박탈했다. 마 총통은 당시 “왕 원장은 더 이상 입법원장 자리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따라 왕 원장은 비례대표 입법위원직과 입법원장 자리를 모두 내놔야 할 위기에 처했다. 두 사람은 2005년 국민당 주석직을 놓고 격돌, 심각한 갈등을 빚은 뒤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왕 원장은 이에 당적 보전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고 타이베이 지방법원과 대만고등법원이 잇따라 왕 원장의 손을 들어줬다. 대만고등법원은 지난 30일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소송에서 당적 박탈이 불합리한 것으로 판단 내려질 경우 왕 원장이 입은 손해는 회복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민당은 이에 불복해 최고법원에 재항고하겠다고 피력했다.

더욱이 대만 검찰이 왕 원장의 권력남용 사건을 내사하는 과정에서 입법원 전화를 도청한 것으로 드러나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 쑤전창(蘇貞昌) 민진당 주석은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일은 미국 ‘워터게이트’보다 더욱 엄중한 사건”이라며 “마 총통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탄핵, 내각불신임 투표 등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타이베이 시민 5만여명은 지난 29일 총통부 앞에서 대규모 야간 집회를 열고 “경기침체로 민생이 어려운 데도 정쟁만 벌이고 있다”며 마 총통의 하야를 요구했다. 시위는 대만 남부 가오슝(高雄)시와 서해안 펑후(澎湖)섬에서도 벌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택시기사는 최근 “마잉주가 경제 살리기에는 실패한 상황에서 왕진핑과 정쟁에만 골몰한다”고 비난하는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해 정국의 새로운 불씨가 되고 있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