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희망 우리의 미래] 독일 튀빙겐대학 석좌교수 몰트만 박사
입력 2013-10-01 17:27
국민일보 창간 25주년-실천신학대학원대 개교 8주년 콘퍼런스
희망의 빛은 눈부셨다. 절망의 끝에서 건져 올린 빛이었다. 하마터면 잊혀질 빛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빛, 그 빛이었다. 개인과 사회, 교회를 소생시킬 무한한 희망의 빛이었다. 1일 서울 서초교회에서 열린 국민일보 창간 25주년 기념 및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개교 8주년 기념 콘퍼런스는 빛을 재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희망’은 위르겐 몰트만 박사의 ‘희망의 신학’으로, 은준관 박사는 ‘희망을 여는 교회’로, 임영수 목사는 ‘모새골의 미래와 희망’으로 각각 모습을 드러냈다. 또 4명의 희망 전문가들은 각 분야에 이를 적용했다. 1200명의 참가자들은 아멘으로 화답하며 하나님을 바라봤다.
“인류는 세상의 끝을 걱정하지만 기독교는 새로운 희망을 말한다”
전세계의 어느 종교도 신이 세계의 미래에 대해 인간의 희망과 연결한 경우는 없다. 희망의 하나님은 새롭다. 장차 오실 그 하나님은 천지를 그의 영광으로 가득 채우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미래로부터 우리를 마주하여 오신다. 기독교 신앙은 온전하고 완전한, 확실한 희망이다. 앞으로 향하는 것이고 오고 있는 것에 대해 기대하는 삶이다. 미래는 기독교에 관계된 어떤 것이 아니라 그 신앙의 본질적 요소다. 이 기대 속에 우리는 인생의 매일을 경험한다. 우리는 기다리면서 나아간다. 희망하고 인내한다. 기도하면서 깨어 있다.
오늘날 희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인류는 세상의 끝을 말하지만 기독교는 그렇지 않다. 기독교인의 미래와 기대는 단순히 역사의 종말이 아니다. 기독교의 종말은 오히려 시작과 관계가 있다. 참 생명의 시작과 하나님 나라의 시작, 모든 피조물이 새롭게 창조되는 시작과 관계가 있다. 종말은 새로운 시작이다.
왜 종말이 시작인가. 기독교적 희망의 원천이자 힘은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신 예수의 부활 안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예수의 십자가상에서 맞은 개인적 종말이 그의 부활을 통해 우리를 위한 참된 시작이 됐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미래가 된다.
기독교적 희망은 성공을 약속하는 낙천주의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미래에 대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미래는 이미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중이고 우리의 모든 현존이 그의 가까우심에 있다는 것이다.
저항과 선취는 희망하는 자들의 덕목이다. 기독교적 희망은 위로하고 저항하는 힘을 보여준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 저기 무언가가 오고 있다는, 그래서 고통과 걱정 속에서도 위로가 된다. 희망의 이유는 먼 미래에 있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데 있다. 나의 개인적 고백은 이것이다. “숨쉬는 한 희망한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