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가 아무리 많이 진전되더라도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곳과 다른 나라에서 생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욱이 조선족처럼 우리와 말이라도 같으면 모를까 언어는 물론 생활습관까지 다른 타향에서 매일매일을 견디는 것은 곤혹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인과 결혼해 우리나라에 정착한 베트남 여성이 무려 3만9000여명이라는 사실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베트남 출신으로 우리나라 남성과 결혼해 당당하게 서울시 공무원이 된 팜튀퀸화(33)씨를 만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05년 결혼한 그는 2011년 7월부터 서울특별시 여성가족정책실 외국인다문화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나라 다문화정책에 대한 간단한 평가를 부탁한다면 어느 단계에 와 있다고 생각하는가.
“서울시에도 각 구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있듯이 전국적으로 이름은 다르지만 지자체마다 위기다문화가정 안전망 구축을 위한 기관이 많이 있다. 이제 기초적인 단계를 지나 정착단계에 왔다고 생각한다. 잘 안 되고 있는 것이 이주여성을 위한 취업이나 창업 부분과 다문화 마을공동체 추진과 같은 것이다. 초기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다문화가정으로 무엇이 가장 절실하다고 느꼈나.
“지금까지 정부나 지자체에서 예산을 많이 투입해 정책을 폈지만 일회성이나 전시성 행사가 많았다고 본다. 이제는 그런 것을 지양하고 이주여성을 정말 한국의 며느리와 딸이라 생각하고 교육을 제대로 시켜 취업이 가능했으면 좋겠다. 제 베트남 친구들도 한국에 많이 들어와 살고 있는데 정부에서 가르쳐주는 네일아트 등 몇 가지 기술로는 취업이 어렵다. 이주여성들이 갖고 있는 특장점을 정확히 분석해 맞춤식 교육을 했으면 좋겠다. 베트남어 통·번역사도 양성만 해놓고 일자리를 찾아주지 못해 무용지물이다. 농촌 거주 여성이면 농업기술을 가르치는 등 취업과 연계한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퀸화씨가 서울시에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
“청소년 글로벌마인드 함양 교육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일이다. 어린이들의 국제적인 감각을 높이기 위해 외국인 강사 32명을 관리하는 일이다. 남미, 동남아 등지에서 온 유학생이나 이주민 회사원 등을 강사로 위촉해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파견해 글로벌 교육을 시키는 일을 맡고 있다. 어릴 때부터 외국 문화를 익혀 균형적인 시민으로 성장시키려는 시의 정책이다.”
-청소년을 상대로 교육을 강화해 보니 효과가 있었나. 예산만 낭비한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어린이들은 감수성이 발달해 받아들이는 속도가 무척 빠른 것 같았다. 예를 들자면 일전에 케냐에서 온 강사가 유치원을 찾아갔더니 검은 피부를 처음 본 원생들이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그렇지만 유치원 선생님과 원장 선생님들이 다같이 협조해 점차 익숙해진 적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다른 문화를 접촉해 그들을 이해한다면 이들이 성장한 뒤에도 글로벌 마인드를 가지는 데 매우 유익할 것이라 믿는다. 어차피 국력이 커지면서 외국과의 접촉은 피할 수 없다면 미리 어릴 때부터 이 같은 분위기를 몸에 익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몇 해 전 베트남에서 시집온 색시가 한국 남편에게 살해된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베트남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광화문에서도 베트남 이주여성들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곳 주간지 기자가 나를 찾아와 인터뷰 요청도 했다. 나는 무척 잘못된 일이지만 베트남의 반응도 약간 지나치다며 한국을 이해해 달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특히 베트남 여성단체와 인권단체에서 분노가 대단했다. 가해자가 비정상적인 사람이란 점을 설명해 주느라 상당히 애를 먹은 기억이 난다.”
인터뷰가 진행된 지난 26일은 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친 후 베트남을 방문하고 귀국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기여서 그곳에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을 물었다. 그도 박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시기에 공무차 베트남을 다녀왔다고 했다.
-베트남의 한류 열기는 어느 정도인가.
“한국 사람들이 상상하고 있는 것 이상이다. 최근 유재석 등이 나오는 예능프로그램을 베트남의 한 도시에서 촬영한 적이 있는데 도시의 교통이 마비될 정도였다. 한류 바람이 분 초창기에는 배우나 모델이 인기였는데, 요즘은 연예인 누구나 베트남에서 인기가 많다. 내가 한국을 알게 된 것도 한류 때문이다. 고 3때 당시 최지우, 배용준, 최수종 등이 나오는 TV드라마 ‘첫사랑’이 엄청 인기가 있었는데 그 드라마를 계기로 한국을 알게 됐다. 최근에도 한국에서는 별로 뜨지 않고 있는 아이돌 스타인데 베트남 공항에 사람들이 하도 모여 인산인해를 이룬 적이 있다.”
-베트남 사람들이 부지런하고 머리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실제로 그런가.
“세계수학대회와 로봇만들기 대회에서 베트남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을 보면 머리가 좋은 것 같다. 그리고 손재주가 좋고 부지런하다는 점이 한국 사람들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공장들이 주로 손을 사용하는 섬유계통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또 나는 베트남 통일 후에 태어난 세대인데 어릴 때부터 정부에서 우리는 전쟁 뒤 폐허에서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가 없다고 교육받았다. 그렇지만 아직도 농촌에 가면 남자는 정치나 사회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놀고먹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도시 사람들은 대개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편히 쉴 틈이 없다.”
-앞으로의 구체적인 계획은.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은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 5년까지 근무할 수 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해 안전행정부나 여성가족부 등 이주민 문제를 다루는 중앙부처에 도전해 보겠다. 무엇보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이주여성들이 차별받지 않고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헌신하고 싶다. 아직도 공문서 작성이 서툴러 동료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으며 간혹 민원인을 대할 때는 정말 쉽지 않다.”
-어머니가 베트남 사람이고 아버지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이 어색해 하지 않나.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큰아이는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당당하게 베트남 출신이라고 밝혀 믿음직스럽다. 또 학교를 마치면 동생이 다니는 유치원으로 가 내가 데리러 갈 때까지 방과후 학습을 할 정도로 착하다. 다만 학교가 아이들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 고민이 많다. 베트남에는 학원이 없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에 진학할 때 만 잠시 학원에 다니며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마음껏 논다. 이른바 사교육이란 것이 없다. 애들이 좀 크면 외국인학교에 보내는 방법도 강구 중인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베트남 공무원과 우리나라 공무원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무엇인가.
“베트남에서는 공무원은 편한 직업 가운데 하나이고 민간인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입장인 데 반해 한국에서는 공무원은 시민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다는 공복의식이 아주 강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것이 한국이 발전한 원동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
팜튀퀸화씨는
베트남 수도인 하노이에서 출생한 이주여성인 팜튀퀸화씨는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강사로 이름을 날리다 약 14대의 1의 경쟁을 뚫고 서울시 공무원이 돼 화제를 모았다. 하노이 국립대학교 한국어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우리 정부의 초청 장학생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2002년 하노이대를 졸업한 뒤 하노이외국어대 한국어과 강사로 일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발간되는 월간지를 보고 펜팔을 시작해 남편을 만났다고 한다. 남편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한국어를 더 배우려는 생각에 우리나라 사람 29명과 이메일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다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다.
△하노이 출생(33) △서울시 외국인다문화 담당관 △ 하노이 국립대학교 한국어과 수석 졸업 △ 세이브더칠드런 다문화가정 아동지원사업 원어민 강사 △서울대 언어교육원 강사
[인人터뷰] 서울시 외국인다문화담당관 베트남인 팜튀퀸화씨 “한국정부 다문화정책 전시·일회성 많아…”
입력 2013-10-01 1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