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용신] 책이 읽히는 계절

입력 2013-10-01 17:39


얼마 전 서울 대한문 앞 쌍용차노조 농성장 앞에서 가만히 앉아 책을 읽는 거리 독서 행사가 열렸다. 단식 농성자들을 위한 낭송회 다독다독(多讀多讀)도 이어졌다.

조선시대 학자 이덕무와 그의 친구들 이야기인 ‘책만 보는 바보’에서 이덕무는 책읽기의 네 가지 이로움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첫째, 굶주린 때에 책을 읽으면 소리가 훨씬 낭랑해져서 글귀가 잘 다가오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한다. 둘째, 날씨가 추울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의 기운이 스며들어 떨리는 몸이 진정되고 추위를 잊을 수 있다. 셋째, 근심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과 마음이 책에 집중하면서 천만 가지 근심이 모두 사라진다. 넷째, 기침병을 앓을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가 목구멍의 걸림돌을 시원하게 뚫어 괴로운 기침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뿐만 아니다. 이덕무와 친구들은 서자로 태어나 뜻을 펼쳐보지 못하는 서러움도 책으로 위안받았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책을 애써 읽으며 견뎌보려 했던 그 사정들을 짐작컨대 가슴이 시리고 아프다.

책을 읽으며 굶주림과 추위, 괴로움과 아픔을 견딘 사람들이 있다면 이야기를 지어내면서 암흑 같은 시대를 위로하고 이겨냈던 사람도 있다. 작가 샐먼 루시디는 소설 ‘악마의 시’를 쓰고 나서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를 모독했다는 죄로 처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자신의 목숨에 백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린 탓에 은둔생활에 들어간다. 하루하루 답답했던 그는 큰아들 하룬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는데 그 책이 바로 요 며칠 나를 이야기 속으로 데려간 ‘하룬과 이야기 바다’다.

아빠 때문에 불안한 도피생활을 하는 아들이 안쓰러워 잠자리에서 토닥이며 들려주고 싶어서였을까. 이 거친 세상을 아들에게 동화처럼 쉽게 설명하고 싶어서였을까. 이야기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이야기꾼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찾아주고 싶은 아들, 이야기 바다를 봉쇄해 이야기꾼의 입을 막으려하는 독재자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그냥 가볍게 지나쳐지질 않는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우화라는 해석도 괜한 것이 아니다.

삶의 고난 한복판에서 누군가는 마치 절규처럼 책을 읽고 누군가의 현실은 마치 항변처럼 이야기로 변환된다. 책의 계절은 가을이 아니라 어둡고 힘든 시대의 한복판일지도. 그 계절엔 절실하게 책이 읽히고 이야기가 축적된다.

김용신(CBS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