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00세 시대는 재앙 아닌 축복이어야 한다

입력 2013-10-01 17:39

노인 위한 복지망 촘촘히 짜고 일자리도 개발해야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장차 한국이 인류에 기여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효(孝) 사상일 것”이라며 “만약 지구가 멸망하고 인류가 새로운 별로 이주해야 한다면 지구에서 꼭 가져가야 할 제일의 문화는 한국의 효 문화”라고 부러워했다. 노인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경로효친 사상은 우리 민족의 뿌리이자 세계적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요즘에는 공경은 고사하고 노인들을 학대하거나 돈 때문에 부모를 살해하는 반인륜적 범죄까지 자행되고 있다. 2일 노인의 날 즈음해 들려온 뉴스들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부산 도심 주택가에서 숨진 지 5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60대 할머니의 백골 시신이 발견됐다고 한다. 집주인과 이웃들은 시신이 백골이 될 때까지 아무도 할머니의 죽음을 몰랐다. 개인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빚어낸 비극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인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도 안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7∼8월 전국 노인복지시설 200곳을 대상으로 예산운용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기가 막힌다. 충북 청주의 한 노인복지시설 대표는 치매나 중풍으로 시설에서 요양 중인 노인들에게 인근 학교에서 급식 후 남은 음식을 얻어다가 아침, 저녁식사로 제공했다. 3년 동안 이렇게 빼돌린 나랏돈 1억6700만원을 유흥주점 술값과 모텔비로 쓰고 개인 빚도 갚았다.

병들고 외로운 노인들을 위해 쓰라고 낸 국민 세금이 파렴치한 시설 운영주들의 쌈짓돈으로 쓰였다니 분통이 터진다. 권익위는 중대 위반사항에 대해 부패사건으로 접수해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한 만큼 강력한 처벌을 통해 일벌백계해야 마땅하다. 몇 년 동안 노인복지시설에서 비리가 저질러졌는데도 그동안 감독기관은 무엇을 했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어려운 노인들을 위해 복지정책을 확대해나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제대로 운용되는지, 재정누수는 없는지 감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50대 이상 중·고령층 80%가 공적연금이나 개인연금 등 어디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는 권혁성·신기철 숭실대 교수팀의 국민노후보장패널조사결과는 주거비와 자녀교육비·결혼자금에 허덕이다 노후준비를 못해 ‘시니어 보릿고개’를 겪는 우리나라 노인들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연금을 포함해 예금 등 노후에 대비한 경제적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응답은 37%에 그쳤다.

우리나라는 노인빈곤율이 45.1%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의학발전으로 수명은 길어지는데 노후준비가 안 돼 있으면 100세 시대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기초연금 등 노인복지망을 촘촘하게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국가재정만으로 노인빈곤을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노후 대비를 위한 심리적·경제적 환경조성도 필요하다. 은퇴 후에는 ‘인생 2막’을 준비할 수 있도록 일자리, 재능기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