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안동현] 동양그룹 사태 누구 때문인가

입력 2013-10-01 17:31


재계 순위 38위로 29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 재벌 동양그룹의 3개 계열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30일 만기가 도래한 1100억원 규모의 회사채와 기업어음(CP) 상환에 실패하면서 자본잠식 상태인 동양인터내셔널과 동양레저 및 지주회사인 ㈜동양에 대한 기업회생절차가 신청된 것이다.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채 발행, 오리온그룹에 대한 주식담보 지원요청, 동양매직 매각 등을 시도했으나 결국 모두 무산되었다.

동양그룹의 자금 사정은 매우 심각하다. 지난달 만기가 돌아온 부채를 제외하더라도 연말까지 1조원이 넘는 기업어음 및 회사채 만기가 도래한다. 내년 상반기까지 포함하면 총 3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회생절차 신청에 따라 채권채무가 동결되었지만 대신 자산매각 등 고강도 구조조정과 자구노력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해야 하며 이에 실패한다면 최악의 경우 그룹 전체가 공중분해될 수도 있다.

이제 동양그룹 투자자나 채권자는 어느 정도 손실을 감당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대부분의 피해자가 개인투자자란 사실이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당연히 동양그룹의 경영진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지만 금융감독 당국과 투자자들에게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

먼저 동양그룹의 책임을 살펴보면 경영책임과 발행증권의 불완전판매를 들 수 있다. 동양그룹은 2008년 이후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주력업종인 건설, 시멘트 업황이 추락하면서 휘청거리게 되었다. 여기에 신성장동력으로 수임기간이 상대적으로 긴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반면 화력발전 사업 분야에서 충분한 이익이 창출되지 않으면서 자금흐름이 꼬이기 시작했다.

야구에서는 투수 교체 타이밍을 결정하는 것이 감독의 가장 중요한 책무다. 경영도 이와 같다. 현재 수익을 내고 있는 캐시 카우(cash cow)에 투자를 지속할지, 아니면 이제 새로운 신성장동력 쪽으로 투자를 전환할지가 경영자에게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이다. 너무 늦어도 너무 일러도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분석이 필요하지만 결국에는 경영자의 직관적 판단력이 요구된다. 동양의 경영진은 이런 면에서 실패했고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위기 발발 초기에 주요 계열사 매각이나 정리 등의 적극적 대처를 주저한 결과 여기까지 몰린 것이다.

더불어 계열사가 발행한 2조2000억원 규모의 CP나 회사채 물량 중 73%를 판매한 동양증권은 불완전판매의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동양그룹이 발행한 회사채나 기업어음은 투기등급으로 공모펀드나 연기금 등의 기관투자자들은 투자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그런데 동양증권은 이렇게 위험한 계열사 발행 부채의 90%이상을 약 5만명의 개인투자자들에게 판매했다. 이는 최근 엇갈린 판결이 나온 LIG건설이 발행한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의 불완전 판매와는 정황적인 면에서 다르다. 계열사가 발행한 증권을 같은 계열사인 증권사가 판매했기 때문에 불완전판매 소지가 더 큰 것이다.

둘째, 투자자들도 ‘무지’를 무기로 모두 면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동양그룹의 회사채나 기업어음의 가산금리는 위험을 부담하는 데 대한 보상으로 지급된 것이다. 저축은행 사태나 이번 건에서 보듯 언제까지 ‘무지’를 앞세울 것인가?

마지막으로 금융감독 당국에도 상당부분 책임이 있다. 주채무계열제도로 인해 은행의 관리와 압박이 심해지면 이를 회피하고자 기업들은 오히려 애꿎은 개인투자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돌려막기’를 하기 마련인데 이러한 풍선효과를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를 준비했어야 했다. 그리고 당연히 계열사 발행 증권을 증권사가 판매할 때는 정보의 비대칭성에 따른 불완전판매 소지가 있으므로 이에 대해 제한을 했어야 했다. 뒤늦게 개정 금융투자업 규정에 따라 이달 24일부터 투자 부적격 등급의 계열사 회사채 및 CP의 판매를 제한하게 되었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