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보고 싶다! 독도강치

입력 2013-10-01 17:30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살던 시대에는 호랑이와 늑대가 꽤나 많았던 모양이다. 목민심서 형전육조(刑典六條)에 백성들을 위해 제거해야 할 제해(除害) 대상으로 호랑이와 늑대를 꼽았으니 말이다.

그 많던 야생 호랑이와 늑대는 지금 한반도에선 볼 수 없다. 일제가 ‘해수구제’ 명분으로 무자비하게 살육한 탓이 크다. 1915∼1916년 이태 동안에만 경찰과 헌병 등 무려 14만여명을 동원해 호랑이 24마리, 표범 136마리, 곰 429마리, 늑대 230마리를 잡아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총독부는 호랑이 등을 조직적으로 사냥하기 위해 ‘야마모토 정호군(征虎軍)’이라는 특별부대까지 만들었다. 이렇게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대형 포유류들은 한반도에서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바다도 예외는 아니었다. 동해는 19세기까지만 해도 강치 천국이었다. 4만∼5만 마리가 서식했다고 한다. 홀로 섬, 독도는 강치의 주요 서식지였다. ‘독도강치’란 이름은 그래서 붙었다. 독도강치는 길이 2.5m, 몸무게 490㎏(수컷 기준)까지 자란다. 1931년 일본인에게 죽임을 당한 ‘리앙쿠르대왕’으로 불렸던 수컷은 길이 2.88m에 몸무게가 750㎏을 넘었다고 한다. 독도 주변 바다를 지배하던 강치의 씨를 말린 장본인은 나카이 요사부로라는 일본인이다. 강치잡이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그는 독도강치 사냥을 독점하기 위해 1904년 독도의 일본 영토 편입을 자국 정부에 청원해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 자가 독도강치를 얼마나 많이 도살했는지 87㎞ 떨어진 울릉도에서도 강치 사체 썩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일본 기록에 따르면 1904년부터 8년간 독도에서 잡힌 강치는 1만4000여 마리에 이른다. 공식 기록이 이 정도니 실제로 몰살된 강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2006년부터 멸종위기종 증식·복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은 지리산에서 반달가슴곰, 소백산에서 토종여우, 월악산과 설악산에서 산양 증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내년에는 19억원의 예산을 들여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내에 호랑이숲을 조성키로 하는 등 백두산 호랑이 종 번식 사업도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그러나 독도강치 복원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독도강치복원국민운동본부’ 등 민간 차원의 운동으로는 한계가 있다. 우리 땅 홀로 섬에 늠름한 강치가 뛰노는 모습을 어서 보고 싶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