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곽희문 (3) 기약없이 내뱉은 말까지 모두 이뤄주시는 주님
입력 2013-10-01 17:11 수정 2013-10-01 20:33
교회 다닌 지 3개월 된 햇병아리 신자가 깊은 영성을 체험하는 중보기도학교 입학생이 되기 위해 면접을 보러갔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면접관인 두 명의 여선교사가 나를 골방에 앉혀 놓고 대뜸 “형제님이 먼저 기도해 주시죠”라며 고개를 숙였다. 기도하는 수준도 면접에 포함되는 것이라 짐작됐다. 매우 당황스러웠다. 목소리를 내어 남 앞에서 기도해 본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못한다고 할 순 없었다. 식은땀이 흐르고 긴 침묵이 이어졌다. 드디어 내 입에서 기도가 나왔다.
“주님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늦어서 죄송한데 절 받아주시면 안될까요. 잘못 살아서 안 받아주셔도 할 말은 없지만 받아주시면 이제 안 떠나겠습니다.”
내 의지와 다르게 튀어나오는 기도였다. 초등학생 수준, 아니 유치원생 같은 기도였다. 이와 동시에 폭포수 같은 눈물이 쏟아졌다. 내 몸에 이렇게 많은 눈물이 저장돼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였다. 눈물을 흘리면서 이 눈물의 근원이 궁금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실체감이 느껴지면서 완악한 내 안의 나를 울게 만들고 있었다. 스스로 울었다는 사실은 내 인생에 엄청난 사건이었다. 외부의 특별한 힘이 내게 작용한 것이 분명했다. 후일에야 그 힘이 바로 ‘성령’이었음을 깨달았지만 말이다.
난 눈물 속에서 하나님께 나의 잘못을 고백했다. 그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 난 이날 주님을 뜨겁게 또 감격적으로 만났다. 중보기도학교 면접시간의 기도가 나를 변화시킨 것이다.
그러니 중보기도학교를 다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주 이어진 케냐지부장 면접은 여지없이 딱지를 맞았다. 사실 내가 가진 신앙경력으론 언감생심이었다. 대신 6개월간 이어진 중보기도학교를 통해 신앙에 대한 다양한 훈련과 지도를 받았다. 그동안 믿지 못했던 ‘노아의 홍수’ 등 성경이야기들에 대한 의문도 풀 수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것을 삶에 적용시키는 일은 사실 힘들었다. 나는 강사들에게 성경적 의문에 대해 가차없이 질문을 퍼부었고 이 과정 속에서 조금씩 빛을 찾아 나가고 있었다. 속사람과 겉사람이 계속 싸우는 좌충우돌 속에서 오랫동안 눌어붙었던 죄의 찌꺼기들을 하나 둘 처리해 나갔다.
돌이키면 나는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움직여지고 있었다. 그분이 발걸음을 먼저 떼면 나는 따라갔고 그때 그 사건과 상황을 만든 것은 나를 향한 연단과 정리의 시간이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나는 선택되고 붙잡힌 행복한 크리스천이었다.
지부장 모집에 탈락했지만 고로고초 어린이들을 모아 생긴 합창단이 한국에 오는데 언어통역 자원봉사를 해 줄 수 있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다른 때 같으면 ‘아니오’라고 했겠지만 신앙의 깊이를 알아가던 나로서는 주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네’를 했다. 아내와 나는 졸지에 40여명의 합창단 어린이들을 돌보는 ‘마마’ ‘파파’가 됐다.
열심히 봉사했다. 빨래도 해주고 운전수에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그런데 오랜 시간 이들과 지내다 보니 합창단 어린이들은 청중들에게 적당한 감동과 안타까움, 놀라움을 주는 앵무새들이었다. 이들에겐 정작 예수님이 주는 감사와 기쁨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눈물만 끌어내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깊이 실망했다.
나도 케냐에 들어가 사역을 한다고 했을 때 이렇게 되지 말란 법이 없었다. 갑자기 현장 의욕이 식었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선교는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합창단을 데리고 케냐로 들어가게 됐다. 현장을 볼 수 있도록 NGO가 배려해 준 것이다. 내가 내뱉은 말이 점점 구체화되어 가고 있었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