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25주년 콘퍼런스] 아흔의 몰트만 교수 “숨 쉬는 한 희망입니다”

입력 2013-10-01 13:33


어떻게 종말이 시작인가. 26일 서울 반포동 서초교회에서 열린 ‘참된 희망, 우리의 미래’ 콘퍼런스에서 위르겐 몰트만 독일 튀빙겐대 석좌교수는 “종말에서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는 것이 신앙”이라고 말했다.

“간단히 말해, 예수께서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몰트만 박사는 “부활하신 예수는 영생의 시작이요, 하나님나라의 시작이며, 새 창조의 시작”이라며 “죽음의 세계 한복판에서 그리스도 안에 생명의 충만함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죄에서 구원하시고 선한 삶이 시작되는 것을 감지한다”고 말했다.

“이 세상의 신에게서 버림 받는 것을 끝으로, 만물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원한 내주하심이 시작됩니다.”

몰트만 박사는 목소리가 조금 잠긴 듯 했으나, 미리 써온 원고를 힘있게 읽어가면서 손짓과 몸짓을 섞어가며 생동감있게 강연했다.

그는 인간의 역사가 종말되고 그리스도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는 미래라고 말했다.

“골고다의 십자가 뒤에서 부활의 해가 떠오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저편에서 하나님의 새 세계의 아침 여명이 동터옵니다.”

그는 기독교적 희망, 그리스도 안의 미래가 세상이 이야기하는 성공과 긍정의 힘과는 다르다고 구분했다. 몰트만 박사는 “기독교적 희망은 성공적인 더 좋은 날을 약속하는 낙천주의가 아니다”라며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더 이상 희망할 것이 없는 그 곳에 희망을 물들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단지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인류 구원만을 희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 영혼의 구세주이면서 온 우주를 화해케 하는 분입니다.”

고난과 실망, 고통과 염려 속에서 기독교적 희망은 위로하고 저항하게 하는 힘이 된다고 몰트만 박사는 강조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저기 무언가가 오고 있다는 희망은 고통과 걱정 속에서도 위로가 됩니다. 변할 수 없는 것 앞에서도 항복하지 않고 저항을 계속할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희망의 힘이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념하지 않고, 불의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세계에 침묵하지 않고, 불만족합니다. 악한 것과 화해하지 않습니다.”

몰트만 박사는 “우리가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면, 우리는 필경 타협할 것”이라며 “우리가 타협하지 않고 저항한다면, 그것이 우리 안에 희망의 불꽃이 꺼지지 않게 만들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독일 나치 독재자에 대항한 고백교회에서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우리는 주만 의지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라는 이사야 26장 13절을 자주 되뇌었다. 몰트만 박사는 2차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 갇혔던 경험 속에서 자포자기하고 싶었던 것이 가장 큰 시험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한국의 삼일운동과 독립운동도 언급했다.

“많은 지배자들이 성경을 위험한 책이라 여겼다. 성경은 저항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1919년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몰트만은 “이 세상을 다만 악하다고 하고 외면해선 안된다. 로마서 12장 20절의 말씀처럼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 진실과 가난한 자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희망, 그것이 바로 한국의 민중신학,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 미국의 민권운동, 유럽의 생태운동이 가진 희망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가 무언가를 좋은 것으로 바꾸기에 앞서, 우리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몰트만은 “생명의 영께서 우리의 이기주의나 타자에 대한 무관심으로부터 깨우신다”며 “장차 올 그날이 오도록 촉구해야 하고 누려야 한다. 하나님의 상황은 기쁨이 지배한다. 거기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1963년 워싱턴DC행진에서 외쳤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인용한 몰트만은 1968년 스웨덴 웁살라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의 호소문을 다시 읽으며 이달 말 부산에서 열릴 WCC총회에서도 이 내용이 다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는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듣습니다. 배고픈 자들과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정의를 찾고 있습니다. 경멸당하는 사람들과 불이익에 놓인 사람들이 그들의 인간존엄성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을 의지하여 우리는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이 하나님나라의 선취에 참여하십시오. 오늘 이미 새창조의 무엇인가가 보이게 합시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날에 완성할 그 새 창조 말입니다.”

너무나 거대한 것,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몰트만 박사는 “아니다. 첫걸음을 내딛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실패나 좌절은 문제가 될 수 없다”며 “매 주일 예수의 부활을 축하하며 다시 시작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일이고 완성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테의 신곡에는 지옥의 입구에 이런 말이 씌여있다고 묘사돼 있다.

“너희가 여기 입장할 때, 가지고 있는 모든 희망을 먼저 지나가 버리게 하라.”

몰트만 박사는 “하나님과 같아 지려는 권력의 유혹도 죄이지만, 타성에 젖은 심장과 슬픔어린 자각, 용기 잃은 의지, 유혹에 빠진 무기력함도 죄”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단순히 연로한 신학자의 도덕적 훈계가 아니다. 베를린에서 범죄를 저지른 한 청년의 말을 몰트만은 인용했다.

“나는 도처에서 일자리를 구해보았지만, 모두로부터 거절당했다. 결국 아무래도 상관업성. 될대로 되어버려. 부셔버려라. 너희를 부수는 그것들을 부셔버려라.”

몰트만 자신도 포로수용소에서 비참한 자신을 발견하고 희망을 잃었다. 인생에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인간은 알코올 마약 아니면 폭력에 빠져들며 자신을 파괴한다. 예수도 십자가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탄식했다.

몰트만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시키시고 지옥에서 영원한 나라로 높이셨다”며 “예수와 함께 하는 공동체에는 절망 속에도 희망이 있다. 지옥 같은 곳에도 하나님이 계셨다”고 고백했다.

몰트만은 이렇게 말했다.

“저의 개인적인 고백입니다. 숨쉬는 한 희망합니다.”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강연장인 서초교회 예배실을 가득 채운 1200여명의 청중들은 박수를 쳤다.

다음 강연은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의 설립자이자 명예총장인 은준관 목사의 차례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