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 3개사 법정관리] “회사채·CP 모르는 사람 유혹, 사기친 꼴”… 개미들 분통

입력 2013-09-30 18:18


경기도에 사는 60대 주부 A씨는 3개월 전 암 진단으로 보상받은 보험금 2000만원을 고스란히 ‘동양 MY-W 전자단기사채 신탁 3051호’에 투자했다. 당시 A씨에게 계열사 회사채 투자를 권하던 동양증권 직원은 “원금 손실도 없고 은행보다 높은 이자를 준다”고 안내했다. 주로 은행만 이용하는 보수적 투자자였던 A씨가 “원금 손실이 안 되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이 직원은 “걱정 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A씨는 재산의 대부분인 8400만원을 ㈜동양과 계열사들의 회사채에 투자했다. 금융소비자원(금소원)에 민원을 제기한 A씨는 “동양의 유동성 위기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면서 “금융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모르는 주부들을 이용해 채권을 팔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분노했다.

60대 주부 B씨도 귀중한 돈을 잃게 됐다. B씨는 지난 3월 동양증권 직원의 권유로 ‘동양뉴리더 CP(기업어음) 신탁 4475호’에 4100만원을 투자했다. 딸이 수년간 벌어 맡겨둔 돈이었다. B씨가 “손실을 피할 수 있는 상품이냐”고 물을 때 동양증권 직원은 “동양레저는 기업 지배구조상 핵심적인 회사라서 절대 안전하다”고 했다.

B씨는 동양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언론에서 접한 뒤 놀라 당시 CP 투자를 권유한 동양증권 직원에게 연락해 봤다고 한다. 그 직원은 “그 당시는 분위기가 지금 같지 않았고 해당 상품의 인기가 좋았기 때문에 권했다”고 변명했다. B씨는 “동양증권의 판매 행위는 불완전판매일 뿐 아니라 사기성 행위 아니냐”고 울분을 토로했다.

금소원은 동양증권의 계열사 회사채·CP 판매 관련 피해 사례를 모으기 시작한 23일 이후 3500여건의 개인투자자 민원이 접수됐다고 30일 밝혔다. 법정관리 신청 공시가 이뤄진 이날에는 2000여건의 민원이 접수됐다. “25만원짜리 월세에 살며 한푼 한푼 모은 돈” “부모님께서 집을 팔아 투자한 3억원” “큰딸의 혼수를 장만하려고 계획했던 돈” “아버지의 퇴직금을 모두 투자한 5000만원” 등 눈물 젖지 않은 돈이 없었다.

민원을 제기한 대부분의 소비자는 회사채와 CP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주부나 고령자였다. 투자자들은 “채권상품인 데다 계열사라서 오히려 안전하다” “형광펜으로 표시된 곳에 이름을 적고 서명하면 된다”는 설명만 곧이곧대로 믿었다며 가슴을 쳤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동양증권을 통해 판매된 계열사 CP와 동양 회사채를 산 개인투자자는 4만2358명, 이들이 투자한 금액은 1조2284억원에 이른다. 금감원은 “CP·회사채 투자금의 지급시기 및 지급금액은 향후 기업회생 절차에 따른 법원의 결정에 의해 정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금소원은 이들이 500억원이 넘는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한다.

금소원 조남희 대표는 “오랫동안 동양그룹의 자금 조달이 부적절하게 이뤄지는 것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금융 당국은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날 주식시장에서는 동양증권 동양시멘트 등 동양그룹주들이 급락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