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카드 사용한도 올려드릴까요?”… 금지된 증액 권유 극성
입력 2013-09-30 18:03
직장인 박모(29)씨는 최근 카드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실적이 좋아 카드 사용한도를 늘릴 수 있는데 신청하겠냐는 내용이었다. 주거래 은행 계열 카드사라 박씨는 의심 없이 한도를 증액해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번호를 입력하라는 말에 ‘보이스피싱’이 떠올라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후 박씨는 직접 은행에 찾아가 카드 한도 증액을 신청했다.
박씨는 “최근 월급이 올랐는데 딱 맞춰 카드사에서 연락이 왔다”며 “은행에 가서 권유 전화를 받았다고 말하자 행원이 피싱은 아니고 전화로 증액을 권유하는 직원들이 있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전화를 통한 카드사들의 사용한도 증액 권유 마케팅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3월 금융감독원과 여신금융협회가 가계부채 급증 예방을 위해 신용카드 표준약관을 변경, 한도 증액 권유행위를 전면 금지했음에도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변경된 약관에는 ‘회원에게 신용카드 이용한도 증액을 신청하도록 권유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고, 고객이 요청하고 동의했을 때만 증액하도록 했다.
카드사들이 한도 증액 권유 마케팅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수익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국민 1인당 평균 2∼3장의 카드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도가 높은 카드를 주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데다 사람들이 자기 카드 한도가 높으면 그만큼 자신의 신용도 높다고 생각해 카드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고액의 물품을 구매할 때 보유한 카드 중 한도가 높은 카드를 쓴다”고 덧붙였다.
다만 카드사들은 금지 규정을 의식, 주로 다른 안내를 하는 것처럼 전화를 해 한도 상향을 유도하는 ‘꼼수영업’을 벌이고 있다.
다른 카드사 관계자는 “한도 증액 권유가 금지돼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마케팅에 나서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결제 시 한도 초과가 뜬 고객에게 연락해 카드 이용에 불편한 사항이 없느냐, 카드 한도에 만족하느냐는 식으로 질문을 던져 한도 상향을 유도한다”고 덧붙였다.
카드사들이 규정을 어겨가면서까지 고객들에게 한도 증액을 권유하고 있지만 지도·점검에 나서야 할 금융당국은 뒷짐만 지고 있다. 당장 피해구제 관련 민원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감독당국 관계자는 “2003년 카드대란 이후 카드산업에 대한 우려 때문에 건전성을 악화할 수 있는 무차별적 한도 증액 권유를 법적으로 금지해 놓았다”면서 “하지만 고객들 입장에선 한도를 늘려주는 게 나쁘지 않아 민원이 들어온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민원이 들어와야 점검에 나설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모든 종류의 텔레마케팅에 대해서 점검하긴 힘들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가계부채 급증 피해가 우려돼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는 점에서 감독 당국이 안일하게 대처한다는 지적이다.
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