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진영 파문’] 강한 청와대에 수동적 부처… 결국 터질게 터졌다

입력 2013-09-30 18:01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의 ‘항명 파동’을 계기로 박근혜정부 내 갈등 조정 능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30일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왕이 모든 정사를 친히 살핌)형 리더십이 ‘강한 청와대·약한 부처’ 구조를 만들었고, 진 장관 사태는 속에서만 곪던 문제가 급기야 터진 결과로 분석된다.

◇디테일 리더십의 한계?=박 대통령은 정부 출범 초부터 세세한 지시를 내리고 직접 부처별 이슈를 챙겼다. 정권 시스템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이른 시일 내 공유하고 정부가 돌아갈 수 있는 동력을 불어넣으려는 차원이었다. ‘디테일 리더십’으로 호평받기도 했다.

당초 국정운영 기반이 안정되기까지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전면에서 정부를 이끌고, 올해 후반기에 접어들어선 각 부처가 담당 국정과제를 책임지고 수행한다는 복안이었다. 국정철학이 어느 정도 공유되면 힘이 분산되면서 박 대통령이 공약했던 ‘책임장관제 확립’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후반기로 접어들어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8월 초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3명을 경질하는 특단의 조치까지 내리기도 했고, 하루가 멀다 하고 성과를 독촉하는 발언도 쏟아냈다. 그러나 정부부처가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는 수동적인 모습으로 고착되는 현상은 막지 못했다. 오히려 김기춘 비서실장을 필두로 하는 청와대는 위상이 강화된 반면 정부 위상은 하락했다.

청와대가 내각 위에 ‘군림’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가운데 갈등 조정을 포함한 정부 내 소통 능력은 사라져갔다. ‘실세 장관’으로 불렸던 진 장관마저 차관급인 청와대 수석과 정책을 조율하지 못해 “지쳤다”고 말하고, 청와대는 대통령과 이견을 보이는 장관에게 “이상하고 고집이 세다”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지경이 됐다.

정권 시스템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했지만 일단은 이 상황을 붙잡고 강행 돌파해야 한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딜레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책을 발표한 후에 법제화로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느 때보다 정부가 바삐 움직여야 한다”고 재차 독려했다. 또 “경계할 것은 정부가 일자리를 만든다고 착각하는 것”이라며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것이고 정부와 국회는 기업이 신바람나게 일하게 법과 제도, 정책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세는 대한민국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이기적 행위로 뿌리뽑아야 한다”고도 했다.

청와대가 개각불가론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처가 아직 해당 업무를 장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개각을 단행할 경우 정부 기강을 다잡는 과정을 다시 시작해야 되기 때문이다. 부처 수장을 교체할 경우 정기국회가 본격적으로 정상화된 상황에서 업무 공백이 우려된다는 측면도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진행하면서 후보자와 관련해 불거질 크고 작은 논란도 정권 초 혹독한 인사 파동을 겪은 대통령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인문학 축제 현장 방문=안팎이 소란스러운 와중에 박 대통령은 국정 기조인 문화융성과 창조경제 구현을 직접 챙기느라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경기도 파주 출판도시에서 열린 ‘파주북소리 2013’ 축제 현장을 방문한 박 대통령은 “책이야말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인류의 위대한 소통 도구”라고 강조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윤창번 미래전략수석이 설명한 ‘창조경제 타운 포털 사이트’ 시연을 지켜봤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