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뉴욕성결교회 장석진 목사 “6·25 참전 미군들 한인교회 정착에도 큰 도움”

입력 2013-09-30 17:47 수정 2013-09-30 20:56


인터뷰하던 목소리가 갑자기 떨렸다.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미국 뉴욕성결교회 담임인 장석진(69) 목사는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를 방문해 자신의 6·25전쟁 경험을 털어놓다 유엔군 참전용사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너무나 고맙죠. 그분들의 은혜를 잊을 수 없습니다.”

장 목사는 6·25 당시 강원도 평창에 살던 여섯 살 꼬마였다. 전쟁이 나자 길도 없는 산속을 헤매며 피란을 떠났다. 숲에 몸을 숨기고 잠을 청하던 일이 63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뉴욕에도 당시 참전했던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인교회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지요.”

관계만 좋은 것이 아니다. 뉴욕주 스테이튼섬의 뉴욕성결교회는 아예 친교실을 ‘참전용사의 방(Veteran’s Hall)’으로 이름 붙였다. 참전용사들이 매달 이곳에서 모임을 갖는다.

“10년 전 저희 교회에서 모임을 할 수 있겠느냐고 하셔서 얼마든지 쓰시라고 무료로 개방했습니다. 쿠키와 차도 대접하고, 가끔 식사도 모십니다. 그분들을 뵐 때마다 얼마나 감사하고 가슴이 짠한지 몰라요.”

정전60주년을 맞는 장 목사의 심정도 뭉클하다.

“저희 교회 근처에 홀로 사셨던 할머니가 계신데, 외아들이 한국전쟁에서 전사했다고 해요. 외아들을 잃고 얼마나 외로우셨을지,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 분들의 희생을 잊어선 안 되죠. 할머니도 지난해 돌아가셨는데, 저희 교회가 장례를 성심성의껏 도와드렸습니다.”

장 목사는 1974년 미국으로 가서 76년 교회를 개척했다. 미주성결교회 총회장과 미주한인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미국 한인교회 역사의 산증인이다.

참전용사들은 한인교회가 지역사회에 정착하는 데도 큰 힘이 됐다. 청소년센터를 세울 때 참전용사들이 앞장서서 주민들을 설득한 덕분에 무난히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교회 앞 도로에 신호등을 설치해주고, 인근 고속도로 이름을 ‘한국전 참전용사의 고속도로(Korean War Veterans Highway)’로 명명했다.

“처음엔 150여명 모이던 분들이 이제는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마지막까지 그분들을 잘 섬기는 게 저희가 할 일입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