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지혜·열성’ 사회에 풀어놓으니 실버인생 빛난다

입력 2013-09-30 17:36 수정 2013-09-30 17:44


지난 28일 서울 서린동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김숙현(70·여)씨가 무대에 올랐다. 원고를 쥔 김씨의 손은 가늘게 떨렸다. 은퇴 이후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 자리에 서 본 게 오랜만인 탓인지 김씨 얼굴엔 긴장감이 묻어났다. 그가 발표한 주제는 ‘성북동 역사 문화유산을 세계에 알리기’였다. 그는 직접 은퇴 이후 하이킹을 했던 경험을 곁들여 발표를 이어갔다. 성북동을 알릴 수 있는 책을 제작하고, 웹 페이지를 구축해 ‘성북동 알리기’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김씨가 참여한 발표는 희망제작소가 주최한 ‘시니어 드림 페스티벌’ 결선 무대였다. 2일 노인의 날을 앞두고 시니어들의 아이디어를 겨룬 이날 대회에서는 총 6개의 팀이 발표에 나섰다. 김씨를 비롯한 6명의 시니어들은 주니어들과 함께 각각 팀을 꾸려 10주간 머리를 맞대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김씨가 속한 팀은 1등을 거머쥐었다. 김씨 팀 외에도 노년층의 아이디어를 ‘스토리텔링’ 영상으로 제작해 젊은 세대들에게 배포하는 것을 기획한 팀도 있었고, 시설 퇴소 청소년의 자립을 돕기 위한 프로젝트도 있었다.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로 재직했던 김씨는 지난 2009년 만65세 나이로 정년퇴직했다. 학교를 그만두니 막막할 때도 많았다. 김씨는 30일 “나이가 든 우리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서 “인생을 살아오면서 배운 지혜들을 이 사회 곳곳에 쓸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처럼 은퇴 이후에도 자신이 쌓아온 경력과 경험을 살려 사회 곳곳에 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회에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차가운 시선에 부딪히지만, 다시 ‘도전’을 꿈꾸는 이들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삶의 경험을 통해 인생 2막을 열면서 생활의 활력도 되찾고 있다.

지난 7월 외교부에서는 ‘시니어 공공외교단’ 20여명을 모집했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61.5세다. 은퇴한 시니어들의 지혜와 경험을 살려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외교단을 꾸리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사업이다. 1기는 이미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20일에는 현대전자 부사장을 지낸 최하경(70) 단장이 스웨덴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한국의 전통문화가 경제 발전에 끼친 영향’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는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바쁘다”며 “돈 버는 일은 아니지만, 은퇴한 시니어들도 우리나라를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은퇴한 노년층이 주인공이 돼 자원봉사에 나서는 ‘시니어 봉사단’ 활동도 활발하다. 노인을 상대로 의약품이나 식품을 강매하는 행위를 직접 단속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광진구 ‘시니어 감시단’은 직접 피해를 당했던 노인들이 팔을 걷어붙여 현장에 직접 다니며 동료 노인들이 피해를 겪지 않도록 예방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