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정병석] 국사를 제대로 쉽게 가르쳐야 한다
입력 2013-09-30 17:52
“일방적인 해석에 집착하지 말고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하는 포용력 발휘해야”
대학생들에게 ‘조선이 망한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느냐?’고 즉석 질문을 자주 한다. 바로 답변하기가 쉽지 않지만 학생 답도 제각각이다. 당파싸움, 주자학, 쇄국정책 등 여러 가지가 주범으로 제시된다. 다음에 ‘자네가 지적한 원인이 왜 어떤 이유로 조선의 쇠퇴를 초래했느냐’고 추가 질문하면 대개 말문이 막힌다. 학생들이 국사를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않고 텔레비전 드라마 등으로 배운 결과이기도 하고, 주관식이 아닌 객관식 수능 대비 교육만 받은 탓이라고 생각된다.
최근 정부가 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결정했다. 만시지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올바른 결단을 내려 참으로 다행이다. 수능 필수과목이 아니면 국사를 공부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할 경우 입시부담 등의 논란은 일단 차치하고 학생들이 느끼는 국사과목의 중요도는 훨씬 커질 것이다.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하자는 데 반대하는 것은 참 수용하기 어렵다. 자기가 맡은 사회과목의 상대적인 비중이 줄어든다고 반발하기도 한다고 한다. 자기 전공과목 이데올로기에 갇혀 국사의 필수화에 반대한다는 것은 조선 쇠퇴를 가져온 성리학 이데올로기의 폐해를 다시 보는 것 같아 참 씁쓸하다.
이렇게 논의되는 것 자체가 그동안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얼마나 경시했는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한 개인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가족의 내력을 알고자 하며, 자존감이 없는 개인은 다른 사람에게도 대우받지 못하는데 하물며 민족 또는 국가 구성원으로서 자국의 역사를 잘 모르면서 어떻게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존중받을 수 있겠는가. 국사과목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현행 국사 교과서가 한쪽으로 치우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이런 문제가 진작부터 있었을 터인데 그동안은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하다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고 국사 교과서가 주목받으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마저도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국사 교과서 쟁점들은 대부분 현대사에 관한 것이다. 똑같은 역사적 사건이라도 사료의 선택과 그 해석에 있어서는 사학자마다 얼마든지 판단이 다를 수 있다. 문제는 자기만의 일방적인 해석에 집착하지 말고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하는 학자로서의 포용력을 발휘하고 그 다음에 자기 생각을 덧붙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법률 서적도 특정한 조문에 대한 법 해석에 논란이 있으면 주된 이론을 설명하고 어느 것이 다수설이라고 밝히는 자세를 취한다. 국사 교과서에 이러한 방식을 취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사는 아예 국책 연구기관에 의뢰해 국정 교과서를 만들어 역사의 주요한 흐름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나서 보다 깊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은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고 토론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
국사가 학생들에게 인기 없는 이유 중 하나가 한자로 된 어려운 용어와 과도한 암기 대상이 되는 연도, 관직, 인물, 제도 등의 인용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얼, 외거노비, 전호제, 방납, 금난전권 등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나 개념들이 한자를 배우지 않은 세대들에게는 어려운 외래어나 마찬가지다. 이것이 국사책을 어렵게 하고 국사를 젊은 세대와 거리를 두게 하는 요인이다.
미국의 사학자 하워드 진의 ‘살아 있는 미국 역사’라는 책은 한 권의 책에 미국 역사의 주요 흐름을 다 담아내어 인기가 있는 책이다. 복잡한 사실관계, 인물, 연도 등을 대거 열거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역사를 기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존 킹 페어뱅크가 쓴 ‘신중국사’도 어려운 용어를 남용하지 않고 방대한 중국사를 한 권으로 압축해 그 도도한 흐름을 정리하며 자신의 견해를 명확히 제시해 주고 있다.
우리 국사책도 어려운 한자투 용어들을 쉽게 우리말로 옮겨주고 주요한 흐름 중심으로 정리해야 한다. 우리가 책에서 배우는 고전, 삼봉집, 반계수록 등도 쉽게 번역하고 보급해 청년들이 읽기 쉽게 해야 한다. 그래야 국사 교육이 제대로 실현된다.
정병석 한양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