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동방예의지국
입력 2013-09-30 18:41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말미에 들어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문제에 대해서는 남북 간 이견이 컸다. 김 위원장이 계속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자 김대중 대통령은 “동방예의지국 지도자답게 연장자를 굉장히 존중하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고, 나이 많은 내가 먼저 평양에 왔는데 김 위원장께서 서울에 안 오면 되겠습니까”라고 설득했다. 김 위원장은 주저 끝에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했다’는 구절을 넣는 데 동의했다.
김 위원장은 김 대통령의 평양 도착 첫날 백화원 영빈관에서 환담하면서 “외국 수반도 환영하는데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도덕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 대통령을 환영 안 할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동방예의지국을 자랑하고파서 인민들이 많이 나왔습니다”라고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란 표현은 후한서 동이열전(東夷列傳)에 나온다. 공자의 7대손이자 전국시대 위(魏)나라 재상이었던 공빈(孔斌)이 정리한 부여 고구려 삼한에 관한 기록이다. 공빈은 “나라가 크나 교만하지 않았다. 군대가 강하나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 풍속이 순박하고 후덕하여 서로 길을 양보하고 밥을 권하였다. 남녀가 거처를 달리하여 앉는 자리를 함께하지 않았다”면서 “가히 동쪽의 예의 바른 군자 나라라고 일컬을 만하다”고 평했다.
최근 법원이 금수산기념궁전의 김일성 시신에 참배한 50대 피고인의 혐의에 대해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에서 평소 이념적 편향성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의 단순한 참배 행위를 망인의 명복을 비는 의례적인 표현으로 애써 이해할 여지가 있다”며 “이미 고인이 된 북한 지도자의 시신이 안치된 시설에서 소극적으로 참배한 행위만으로 국가의 존립·안전 등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다고 속단하기 주저된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인터넷 등에서는 김일성 참배는 결코 단순한 예절로 볼 수 없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방북단의 금수산궁전 참배 문제는 또 다른 난제였다. 당시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은 “대통령의 참배는 안 됩니다. 북측에서 계속 요구한다면 한광옥 비서실장과 내가 대신 참배하겠습니다. 그리고 먼저 돌아가 이를 밝히고 구속되겠습니다”라고 배수진을 쳤고 북측은 더 이상 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13년 전 방북단의 고뇌가 무색해지는 판결이 아닐 수 없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