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시나리오 쓰고 연기하고 연출·촬영까지… 정신장애인들의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입력 2013-09-29 18:56 수정 2013-09-29 23:35
재활시설 ‘한마음의 집’ 주민 초청 영화 상영회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어떻게 없앨까?’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서 정신장애인의 사회 복귀를 돕는 치료·재활시설 ‘한마음의 집’을 운영하는 최동표(49) 원장은 늘 고민해 왔다. 최 원장이 내놓은 묘안은 영화제작 프로젝트 ‘내 마음이 들리니’다. 정신장애인들이 직접 시나리오 집필부터 연기·연출까지 도맡아 영화를 제작하기로 한 것이다.
소식을 듣고 도움의 손길이 찾아들었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네티즌 등이 힘을 모아 제작비 2700만원을 마련했다. 사회적기업인 영화제작소 ‘눈’은 영화 교육과 제작 전 과정을 도왔다.
한마음의 집 회원 12명은 지난 5월부터 평일엔 제빵공장이나 편의점 등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휴일을 반납한 채 영화를 공부하고 만들었다. ‘눈’ 관계자로부터 카메라 작동법을 익히고, 영화 포스터를 따라하는 표정연습과 감정표현법 등 연기 수업도 받았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회원들은 한 주 전에 배운 내용도 쉽게 잊었다.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된 지난 8월엔 촬영 장소를 옮길 때마다 폭염에 지치기 일쑤였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들이 29일 시설 마당에서 열린 상영회를 통해 선보였다. 첫 관객은 15년간 동고동락하며 이제는 막역한 이웃사촌이 된 홍은동 주민들이다. 오후 5시부터 근처를 오가던 동네 어르신과 아이들이 마당을 채웠다. 중국음식점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이 관객을 위해 튀긴만두와 탕수육을 대접했다. 상영회가 시작된 7시 무렵엔 23평 남짓한 마당이 회원과 자원봉사자, 주민 등 160여명으로 가득 찼다. 익숙한 동네 풍경이 스크린에 비치자 관객들은 반가운 마음에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상영 도중 잠깐 비가 내렸지만 마당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떠날 줄을 몰랐다.
이날 상영된 작품은 ‘점심을 먹고’ ‘만복아 약 먹자’ 등 10분 안팎의 단편영화 2편과 메이킹 필름 ‘내 마음이 들리니’였다. 각자의 바람을 흑백필름에 담은 옴니버스 영화 ‘점심을 먹고’ 주인공들은 ‘바둑 고수가 되고 싶다’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나눈다. ‘만복아 약 먹자’는 퇴소를 꿈꾸며 3년을 보낸 만복씨가 가출했다가 한마음의 집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가족이나 의료진에 못 이겨 자신의 뜻을 내세우지 못하는 정신장애인들의 고충이 담겼다.
영화를 관람한 종로구 정신건강센터 직원 김은수(30)씨는 “회원들이 촬영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 담긴 메이킹 필름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며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김영훈(43) 한마음의 집 사무국장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정신장애인들의 여가문화로 자리잡도록 내년 사업을 도울 재단을 알아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영화 DVD를 제작해 공공기관에 보급하고 내년엔 장애인영화제에 출품할 계획이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