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의 여행] 이상각 ‘한글 만세,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

입력 2013-09-29 18:27


오는 10월 9일은 제567돌 한글날이다. 한글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역사저술가 이상각의 ‘한글만세,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도서출판 유리창)은 1942년 발생한 ‘조선어학회 사건’ 등 한글에 얽힌 역사적 순간들을 재조명하고 있어 저술의 무게감을 더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내 눈을 반짝이게 한 것은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이 술집 방명록 금서집(錦書集)에 남긴 ‘한글이 목숨’이라는 글귀다”면서 “문득 독립운동사의 제5열에서 겨레 얼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조선어학회 33인의 열정과 고난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그려낼 수 없을까라는 생각에서 집필했다”고 밝혔다. ‘드라마틱’이라는 말은 한글 자체보다는 한글로 인해 빚어진 사건과 인물을 강조하겠다는 저자의 의도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낸다.

책을 펼치면 조선 시대 언문으로 괄시 당하던 한글이 대한제국에서 국문으로 거듭나는 과정부터 시작해, 일제 강점기 계획적으로 조선어를 말살하려는 총독부의 교육정책에 맞서 우리말과 글을 사수하고자 하는 조선어학회 회원들의 치열한 현장이 재현된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1910년 조선광문회에서 편찬한 국어사전 ‘말모이’를 해방 직후 기적적으로 되찾은 일이다.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찾아냈어요. 하늘이 우리를 돕는 모양입니다.”(227쪽)

‘말모이’를 토대로 ‘조선말 큰 사전’을 편찬한 조선어학회는 1947년 봄 을유문화사를 찾아가 설득한 끝에 제1권을 출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1948년 평양의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한 이극로 김병로 홍명희 백남운이 북쪽에 눌러 앉음으로써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사업은 남과 북으로 갈려 이원화되게 된다.

이른바 남한엔 최현배, 북한엔 이극로가 어문정책을 총괄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엔 이렇듯 일제와 분단의 애환이 서려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분단 이후의 한글이 더욱 관건이다. 남북한 가운데 어느 쪽이 한글의 가치와 순수성을 더 지켜냈는지는 통일 이후에 판가름 날 것이다. 한 번 빠져들면 소설보다 더 흥미롭게 읽힌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