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톱’ 부재 SK, 글로벌·신수종 사업 ‘스톱 위기’

입력 2013-09-29 18:05


총수 형제의 동반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SK그룹에 경영공백이 본격화되고 있다.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기업 인수·합병(M&A)이 좌초하고, 최태원 회장이 직접 추진했던 여러 해외 사업도 발목을 잡혔다.

여기에다 재계 순위 3위인 SK그룹뿐만 아니라 한화·STX·동양그룹까지 위기에 빠지면서 산업계 전반에 악영향이 우려되고 있다. 협력업체 동반 부실, 고용·투자 축소 등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SK “오너 부재로 해외·신사업 모두 차질”=SK그룹의 에너지·발전회사인 SK E&S는 STX에너지 인수의향서를 제출하고 인수전에 의욕적으로 뛰어들었다. STX에너지가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STX전력, STX솔라, STX영양풍력)와 해외 자원 지분, 석탄화력발전소인 북평화력 사업권이 상당한 가치를 갖고 있는 데다 성장 잠재력도 풍부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지난 27일 최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형제에 대한 항소심 선고가 나온 뒤 SK E&S는 돌연 STX에너지 인수에 참여하지 않기로 최종 결론을 냈다. SK그룹 관계자는 29일 “STX에너지 인수 금액이 1조원대로 큰 데다 인수전이 시작되면 경영상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할 일이 많다”며 “항소심에서 SK E&S의 대표이사 부회장을 겸하고 있는 최 부회장까지 구속되면서 포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SK그룹은 최 회장과 최 부회장이 그룹 성장의 양대 축인 ‘글로벌 사업’, ‘신사업’을 각각 전담해온 탓에 고민이 깊다. 최 회장은 2000년대 중반 ‘부진불생(不進不生·나가지 못하면 살지 못한다)’을 모토로 내세워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해 왔다. 2∼3년 전부터는 글로벌 비즈니스 서포터 역할에 전념하며 신사업의 물꼬를 텄다. 해외시장, 특히 개발도상국의 경우 현지 고위 공무원이나 오너 일가와의 인맥이 사업 추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재계 관계자들은 최 회장이 다양하고 폭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최 회장은 지난해 태국에서 잉락 친나왓 총리를 만나 태국 내 홍수 조기경보 및 대응 시스템 구축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 사업은 최 회장 구속 이후 사실상 무산됐다.

태국에 석유 저장시설을 설치해 아시아 석유사업의 교두보로 삼으려던 계획도 발목이 잡혔다. 터키에서는 도우시 그룹과 1억 달러의 펀드를 공동 조성해 통신·에너지 인프라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으나 진전이 없다. 또 다른 SK그룹 관계자는 “외국 기업이나 정부를 상대로 사업을 할 때 기술력, 역량 못지않게 우리가 얼마나 의지를 갖고 있는지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며 “지금까지는 최 회장이 전면에 나서서 비즈니스를 해왔는데 그렇게 할 수 없으니 당장 속도를 내려던 사업이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최 부회장이 맡아온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SK배터리 서산공장은 전기차 1만대에 공급할 수 있는 자동화 양산 라인을 갖추고 지난해부터 가동을 시작했으나 추가 투자는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협력업체 동반 부실, 저성장 구조 고착화 우려=재계는 SK그룹은 물론 한화·STX·동양그룹의 위기가 산업계 전반으로 옮겨붙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의 부재가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신규 사업, 대규모 투자, 인사 등 경영 전반에 걸쳐 의사결정이 지체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부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 재계 13위 STX그룹의 경우 현재까지 시가총액 8500억원(34.1%)이 증발했다. STX그룹은 공중분해 직전이다. 지주사인 ㈜STX를 비롯해 조선해양·중공업·엔진·포스텍은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에 버금가는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갔다. 팬오션과 STX건설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상태다.

동양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 동양그룹 사태는 규모는 다르지만 1999년 대우그룹 때와 비슷하고, 산업계에 직격탄을 날린 2008년 금융위기와 닮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오너 부재나 사업 실패에 따른 어려움에 직면하면 고용·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고 전후방 산업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쳐 협력업체 동반 부실을 불러올 수 있다”며 “궁극적으로 국민 체감경기가 더욱 나빠지고 저성장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어 걱정스럽다”고 지적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