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곽희문 (1) 인질극 참사 발생 나이로비는 나의 영적 전쟁터
입력 2013-09-29 17:11 수정 2013-09-29 19:19
지난 21일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웨스트게이트란 쇼핑몰에서 소말리아 이슬람 테러 단체가 인질극을 벌여 72명이 숨지는 대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웨스트게이트는 내가 사역하는 고로고초 엘토토 유치원과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사고가 난 시간, 우리는 예배를 위해 고로고초에 있었고 소식도 나중에 들었지만 마음 한켠이 서늘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얼마든지 내가 그 자리에 가 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시로 폭탄 테러와 갖가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나이로비. 가끔씩 이곳은 전쟁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 사람들은 위험의 척도를 재며 전쟁터로 평하겠지만 내 경우는 ‘영적 전쟁터’로 보이는 탓이다. 바로 이곳에서 나는 아내, 딸과 함께 6년째 살고 있다.
인생의 묘미 중 하나는 평범하게 지내던 삶 속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 경우가 바로 이 ‘모범사례’에 해당된다. 그러나 나는 이 극적인 상황이 발생하게 된 비밀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우연한 사건들이 연결되고 이어진 것은 결국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였음을 말이다. 정답을 알아버린 내 마음은 평온하고 감사와 기쁨이 넘친다. 외부에서 발생하는 그 어떤 악조건이나 어려움도 내 속의 평강을 깨지 못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2006년 당시 38세였던 나는 서울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하며 아내, 7살이었던 딸과 함께 아주 재미있게 살고 있었다. 명문대 출신에 잘 가르친다고 소문이 나서인지 학원이 잘돼 수입도 쏠쏠했다. 친구 좋아하고 술 좋아하던 나는 잘 풀려가는 인생을 즐기며 하루하루를 신나게 보냈다. 물론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종교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을 만큼 스스로 행복했다. 이런 내게 ‘사건’이라고 할 만한 일이 덜컥 일어났다.
그해 겨울로 기억된다. 친구들과 어울리다 술이 얼큰해진 채 귀가했다. 아파트 현관문을 밀고 들어서는데 아내와 딸이 부둥켜안은 채 울고 있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인가 깜짝 놀라 사연을 들어보니 한편 어이가 없었다. 케냐 고로고초에 사는 한 소녀의 어렵고 힘든 삶을 소개한 동화책을 함께 읽었다고 한다. 그런데 쓰레기를 주워먹고 학교도 못 가는 이 소녀의 이야기가 너무 불쌍해 함께 울고 있었던 것이다.
딸과 아내는 눈물을 철철 흘리며 진짜 슬프게 울었다. 내가 감성이 메말라서인가. 뭐 이런 정도에 우는지 이해가 안 됐지만 불쌍한 이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어깨를 다독였다.
고로고초는 지역명이다. 바로 이곳이 내 인생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오게 될 줄 이때만 해도 나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고로고초는 케냐인들이 사용하는 스와힐리어로 ‘쓰레기더미’라는 뜻이다. 케냐 나이로비에서 나오는 모든 쓰레기를 모아 버리는 곳이 바로 고로고초였다. 이 쓰레기장 주변에는 쓰레기 음식물을 먹거나 또 폐품을 건져 하루하루를 지내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곳의 한 소녀 이야기가 모녀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이다.
다음날 우리는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이곳을 도울 수 있는 NGO 단체를 물색했고 한 단체의 후원회원으로 등록해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에 나섰다. 아내와 딸과 한 약속을 지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또 다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곽희문 선교사 약력=1969년 서울 출생. 고려대 행정학과 졸업. 전 청출어람학원 원장. 현재 케냐 나이로비 엘토토 미니스트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