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재중] 국회선진화법 취지 살리려면
입력 2013-09-29 17:30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이 터지고, 놀란 의원들은 혼비백산한다. 한 야당 의원이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실 문을 해머로 내려치고,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뒤엉켜 몸싸움을 한다. 국회의장이 사무처 직원들과 여당 의원들의 엄호를 받으며 급하게 안건을 처리하려 하자 야당 의원이 의사봉을 빼앗으려고 의장석으로 뛰어들고 의원들은 법안 서류를 집어던지며 고함을 지른다.
부끄럽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익숙했던 우리 국회의 모습이다. 16대 국회 이후 18대 국회까지 12년간 31번의 몸싸움이 발생했다. 하지만 19대 국회에서는 날치기와 몸싸움, 폭력이 사라졌다. 대화와 타협의 성숙한 정치문화를 지향한다며 지난해 통과시킨 국회법 개정안(국회선진화법) 때문이다.
주요 내용은 여야 간 이견이 있는 안건을 심사하기 위해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안건조정위원회를 구성해 최장 90일간 논의한다. 조정위원회는 여야 동수로 구성하며, 재적 조정위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조정안을 의결할 수 있다. 말하자면 쟁점 법안에 대해 숙려기간을 두고 여야가 서로 양보하고 타협해 이견을 좁히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야는 정기국회가 가까스로 정상화되자 국회선진화법을 놓고 거센 공방을 주고받고 있다. 새누리당은 야당이 국회선진화법을 원내투쟁에 악용하려 한다고 비난하고, 민주당은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법안에 대해 위헌 운운하는 것은 과거로 회귀하자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위헌 근거는 헌법 제49조 ‘국회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조항이다.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하려면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는 국회법 제85조 2항이 헌법상 다수결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이라는 단서가 있어 다수결 원칙의 예외에 해당한다. 여당 내에서도 5분의 3 이상의 찬성이라는 규정이 특별요건에 해당하기 때문에 위헌은 아니라는 자체 분석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새누리당이 국회 스스로 만든 법안을 제대로 시행해보지도 않고 위헌 소송이나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정치력 부재를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민주당도 특정 안건이 아닌 모든 안건을 국회선진화법으로 막겠다고 하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에 불과하다. 수권정당을 표방한다면 대안을 제시하며 이견을 좁히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박근혜정부 출범 초기 야당이 국회선진화법을 내세워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를 막으면서 여당이 겪었던 트라우마(외상 후 증후군)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국회법 개정안이 5분의 3 이상 찬성을 의결 요건으로 정했다는 것은 여야가 숫자 대결보다는 정치력을 발휘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여야가 3자 회담 결렬 등으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대립하고 있을 때 중진들이라도 나서서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정권교체를 통해 언제든 입장이 바뀔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될 당시 대선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제 국회선진화법의 정신을 되돌아보자. 지금 당장은 더디고 답답하더라도 여야 모두 인내심을 발휘해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법과 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조금씩 양보하면서 설득하고 타협하는 정치력 발휘가 필요하다. 이번 정기국회는 그 시험대가 될 것이다.
김재중 정치부 차장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