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찬희] 라이선스 라지

입력 2013-09-29 18:50

1947년 8월 15일, 인도는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자와할랄 네루를 초대총리로 하는 정부가 출범했다. 윈스턴 처칠을 배출한 영국의 명문 기숙학교 해로스쿨과 케임브리지대를 나온 네루는 역설적 인물이다. 그는 사회주의자인 동시에 특권에 익숙한 귀족(브라만)이었다. 급진주의자이면서 동시에 비폭력 독립운동을 주도한 마하트마 간디의 추종자였다.

네루는 민주주의를 정치체제로 내세우면서 경제에는 사회주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좌파 케인지언의 영향에다 소련의 초기 성공에 자극 받아 계획경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보호주의를 기반으로 한 계획경제는 부작용을 드러냈다. 외환을 통제해 수입을 제한하고, 온갖 명목의 국가보조금을 뿌리며, 은행 국유화를 통해 저소득층에 선심성 대출을 해주는 포퓰리즘 정책은 인도 경제를 30년이 넘게 이어진 ‘저성장 늪’으로 밀어 넣었다.

계획경제가 뿌린 씨는 포퓰리즘 정책을 양분으로 꽃을 피웠다. 이 꽃이 인도 경제를 지칭하는 ‘라이선스 라지(License Raj)’다. 영국이 인도를 지배한 기간을 지칭하는 브리티시 라지(British Raj)에서 나온 말로 ‘규제 왕국’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과다한 규제, 비효율과 비합리, 부정부패는 1990년대 들어 인도 경제를 위기상황으로 몰고 갔다. 1991년 외화가 고갈되면서 인도는 국가부도에 직면했다. 절체절명의 시기에 총리가 된 나라시마 라오는 정치적 배경이 없던 만모한 싱을 재무장관에 전격 기용했다. 중앙은행 총재를 거쳤던 싱은 라이선스 라지를 걷어내는 경제 개혁에 착수했다.

촘촘하던 규제를 베어내자 인도 경제는 날아올랐다. 1990∼2000년 수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4.9%에서 8.5%로 상승했다. 시크교도인 싱은 정치적 소수파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1996년 실각하기도 하지만 2004년 총리로 화려하게 부활해 개혁을 이어왔다. 인도는 2007년까지 7∼10%에 이르는 놀라운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최근 싱 총리도 한계에 봉착했다. 경제는 외환위기에 더해 재정위기 조짐까지 보이고 있고, 정치적으로도 집중공격을 받고 있다. 인도 경제가 힘을 잃고 있다는 전문가 분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인도 경제, 그리고 싱 총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온갖 규제와 포퓰리즘 정책이다. 만들기는 쉬워도 없애기는 어려운 것이 라이선스 라지다. 무상복지, 보편적 복지라는 구호가 난무하는 우리에게 라이선스 라지는 ‘남의 일’ 같지 않다.

김찬희 차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