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철이’로 스크린 복귀 유아인 “현실에 발 딛고 있는 캐릭터 좋아하다보니 맡는 역마다 가난해요”
입력 2013-09-29 18:25
배우 유아인(27). 그는 세상의 답답함을 절대 못 참고 어른들 말은 죽도록 안 듣는 반항아다. 하지만 속 깊은 곳에 따뜻함도 있다. 불안한 청춘이지만 단단한 심지도 있어 보인다. 건들거리거나 목소리 깔지 않아도 남자답게 보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영화 ‘깡철이’(감독 안권태)에서 자신과 비슷한 역할을 맡은 유아인을 27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 ‘깡철이’는 엄마(김해숙)와 행복하게 사는 것이 유일한 소원인 부산 사나이 강철이의 이야기. 그런데 그 소원, 참 힘들다. 각종 장기가 안 좋은 엄마는 치매까지 걸렸다. 엄마는 툭하면 사다리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건물 옥상에 올라가 있고, 아들에게 ‘여보’라 부른다. 정신이 돌아왔나 싶으면 아들에게 노란 가방을 쥐어 주며 빨리 유치원에 가라고 한다. 파출소에 끌려온 엄마가 오줌을 싸도 강철이는 웃으면서 걸레질을 한다. 엄마는 당장이라도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강철이에게는 돈이 없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는 수술비를 대줄테니 ‘조직’에 들어오라는 폭력배들이 있다. 이 정도면 나머지는 사실 뻔한 이야기.
그는 “기대 이상이었다. 자칫 진부하고 칙칙하고 감정과잉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괜찮았던 것 같다. 모자의 이야기가 신파로 흘러가지 않고 세련되게 풀어진 것 같다”고 자평했다.
몰려드는 시나리오 중에 그가 ‘깡철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끌리는 작품이었다. 나는 세상의 때가 조금 묻었는데 깡철이는 바보처럼 보일 정도로 순수하다. 내가 아직 순진함을 원하는 사람이고, 내게 예쁜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소중한 가치를 반짝반짝 빛나게 하고 싶었다.”
유아인은 감정을 최대한 덜어내고 담백하게 풀어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하지만 영화 전체적으로는 부산 사투리, 조폭의 거친 액션이 섞이며 영화 ‘친구’가 연상되는 지점이 있다. 그게 ‘낡은’ 방식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그는 천천히 얘기를 듣고 “그래도 이 영화에는 유아인이 있지 않냐”며 크게 웃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7), ‘좋지 아니한가’(2007),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 등을 통해 충무로 세대교체를 예고했던 유아인이 대중에 눈도장을 찍은 것은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부터. 이후 530만명을 동원한 ‘완득이’(2011)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했다.
그는 “그동안 성장해왔다면 ‘완득이’ 이후로는 확장해가길 원한다. 들어오는 작품이 많아지고 안정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지금 이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인물이 좋다. 재벌 2세나 너무 가볍거나 판타지 같은, 비현실적인 설정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영화에서 맡은 역이 다 가난했다”며 웃었다.
그는 종종 김수현 송중기 등 또래의 ‘잘 나가는’ 배우들과 비교된다. 유아인은 에두르지 않고 “그들은 더 스타이고, 광고도 많이 찍는다. 나는 더 말을 안 듣고, 제멋대로인 애다. 서로 색깔이 다르고, 갖고 있는 이미지도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나는 이런 얘기를 조심스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교 자퇴 후 영화를 찍는다고 집을 나와 방황하던 시절이 길어서일까. 그는 “예전에는 행복을 되게 거창하게 생각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도 친구들과 만날 때가 제일 좋다. 내가 외롭다는 것을 잠시나마 잊어버리는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이어 “스물한 살에 (고향인) 대구에 내려갔다 서울로 오는데 눈물이 펑펑 나더라. 혼자가 된 느낌, 그런 결핍이 있었다. 그런 결핍을 나라는 사람의 천형으로 받아들인다. 고민이 증발하지 않도록, 긍정적으로 치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을 이었다.
요즘 그의 가장 큰 고민은 일이다. “일이 몸에 철썩 달라붙었다. 그걸 분리시키면서 살아가길 원했다. 서로 영향을 주지 않길 원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게 확 겹쳐졌다. 일로 나를 증명하는 게 무서운 일이다. 톱스타가 된다고 내가 톱 인간이 되는 건 아니다. 내 인기가 바닥이라도 내 삶의 성취도가 바닥에 있는 것도 아니고”라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진지했고, 평소 생각을 술술 풀어냈다. “일에 정복당하고 싶지 않다. 배우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다”는 그의 앞날이 궁금해졌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