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사건’ 항소심 선고] 재판부 “김원홍, 재판에 영향없다”… 최태원 진술 안먹혀

입력 2013-09-27 18:40 수정 2013-09-27 23:06


‘SK 사건’ 재판부가 27일 선고에서 쟁점으로 본 것은 ‘선지급 지시 여부’와 ‘펀드의 전략적 성격’이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이 소명된 이상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을 재판에 부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반복되는 진술 번복과 김씨의 송환을 통한 SK 측의 ‘재판 흔들기’ 전략이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문용선)는 “최태원 SK 회장이 선지급을 지시해 펀드를 조성한 것과 해당 펀드가 전략적 펀드가 아니라는 사실이 모두 인정된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두 쟁점에 대해 항소심에서 진술을 두 번 번복했다. 1심에서는 “선지급에 관여하지 않았고 펀드도 전략적이었다”고 했으나 항소심 공판에서 “선지급만 지시했다”고 번복했다. 선고를 앞두고는 펀드의 성격에 대해 “정상적인 펀드가 아니었고, 김씨에게 사기당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김씨에게 속았다’며 책임을 피하려 한 ‘회피전략’은 통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김씨의 역할이 아닌 최 회장이 ‘정상적이지 않은 펀드에 선지급을 지시한 사실’을 유죄로 판단했다. 오히려 진술을 수차례 바꿔 죄질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재원 SK 부회장 역시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다. 최 부회장은 수사기관과 1심에서 범행을 자백했으나 항소심에서는 “허위자백이었다”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재판부는 “허위자백이라고 신빙성이 없는 건 아니다”며 “최 부회장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들을 당시 진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지난 재판에서 “자백은 증거의 왕”이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최 회장 형제에게 모두 유죄 판결이 나오면서 5개월여 동안 숨 가쁘게 진행된 ‘SK 사건’ 항소심 재판이 막을 내렸다. ‘키 맨’으로 통했던 김씨의 증언을 이 재판에서 들을 수 없게 됐다.

당초 김씨의 역할은 1심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김씨의 존재는 SK 측이 ‘나(김씨)와 김준홍 전 베넥스 대표가 모든 것을 기획했다’는 최 회장과 김씨의 전화 통화 내용을 공개하면서 부각됐다. 재판부도 김씨에 대해 “김씨 때문에 최 회장이 이렇게 됐다”며 중요성을 인정하기도 했다. 김씨가 지난 7월 31일 대만에서 체포된 후 증인 소환에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26일 김씨가 국내로 전격 송환되면서 다시 한번 변론이 재개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재판부는 기존 방침을 고수하며 선고를 진행했다. SK 측은 대법원 재판을 통해 ‘김씨의 증언을 듣지 못해 심리가 미진했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재판부는 “김씨는 이 사건 재판에 영향을 주지 못하며 별도의 수사와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여환섭)는 최 회장의 횡령사건 공범으로 지목된 김씨에 대해 28일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김씨는 26일 대만에서 송환된 뒤 검찰에서 기초조사를 받고 서초경찰서에 입감된 뒤 다음날 다시 조사받았다. 김씨는 SK 수사가 본격화되던 2011년 3월 중국으로 출국했다가 같은 해 12월 대만으로 도피해 기소 중지된 상태였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