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사건’ 항소심 선고] 판사 “김원홍 탐욕스런 인물”… 변론재개 무산에 침통
입력 2013-09-27 18:40 수정 2013-09-27 23:04
“도망의 우려가 있어 법정 구속해야 하는데 할 말 있습니까.”
“도망가지 않겠습니다.”
최재원 SK그룹 부회장은 재판장의 물음에 다급하게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대답을 들은 서울고법 형사4부 문용선 부장판사는 “법정 구속할 수밖에 없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27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을 가득 메운 100여명의 SK그룹 임직원들은 최태원 회장에 이어 최 부회장마저 구속되자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최 회장 형제 동반구속이라는 SK 측의 최악의 시나리오는 판결문을 낭독하는 재판장의 목소리에서 이미 감지됐다. 재판장은 2시간 동안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며 최 회장 형제를 훈계했다. 문 부장판사는 “죄를 면하기 위해 항소심에서 온갖 엉터리 같은 주장들을 들고 나왔다”며 “정말 죄가 없다면 ‘죄가 없다’는 그 말 한마디만 하면 될 것을 온갖 허위자백과 주장들을 만들어냈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 형제는 법대 맞은편에 나란히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재판장의 훈계를 들었다. 서로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감형에 대한 기대감은 보이지 않았다. 방청석에 앉은 SK 직원들과 변호인들도 유죄 선고를 예감한 듯 표정이 굳어졌고, 일부는 눈을 질끈 감았다.
SK 측은 재판 시작 전까지도 희망을 품고 법정에 들어왔다. 이번 사건의 주요 공범으로 지목된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이 26일 대만에서 체포돼 국내로 송환됐기 때문이다. 최 회장 측은 ‘김 전 고문을 법정에 세워야 한다’며 변론재개를 신청했지만, 재판부는 선고 직전까지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변론이 재개된다면 다시 한 번 감형을 노려볼 수 있었다. 그러나 재판장은 “판결을 선고하기에 충분한 심리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재판장은 “김 전 고문이 허황되고 탐욕스러우며 도박적인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법정에 증인으로 세운다 해도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상기된 얼굴의 최 회장은 선고가 끝난 후 교도관들에게 이끌려 다시 구치소로 향했다. 그는 법정의 수감자 통로로 들어가기 직전 최 부회장을 잠깐 바라보기도 했다. 또 방청석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누군가를 찾는 듯했다. 최 회장의 부인 노소영씨는 판결 이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 채 눈물을 훔쳤다.
정현수 문동성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