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화되는 20代] ‘젊음≠진보’ 낡은 옷을 벗다

입력 2013-09-28 03:59


대학생 이모(25)씨는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소개한다. 인터넷에서 북한과 관련해 ‘의심스러운’ 글을 보면 국가정보원에 신고하기도 한다. 2007년 17대 대선부터 새누리당을 지지해왔다는 이씨는 “이석기 의원 사태가 벌어졌을 때 처음부터 통합진보당 세력은 ‘빨갱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며 “이번 일로 주변 친구들의 ‘안보관’이 확실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2010년 연평도 피격 당시 경기도 가평에서 이등병으로 복무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조모(26·여)씨도 보수주의자다. 이씨와 달리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데 적극적이지는 않다. 조씨는 “내가 왜 보수주의자인지 이유를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보수적 관점에 좀더 익숙해졌고, 일부 극단적 진보 세력에 거부감을 느끼다 보니 어느 순간 보수주의자가 됐다고 한다. 그는 “이석기 의원 사태가 전개되는 걸 보고 진보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며 “말은 안 하지만 주변에도 나 같은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젊음=진보’라는 오랜 인식이 깨져가고 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20대의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이 의원 사태 직후인 9월 첫 주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20대의 57%가 “박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답했다. 전체 연령대 평균 지지율(64%)과 7% 포인트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9월 둘째 주에는 “잘하고 있다”가 55%로 “잘못하고 있다”(27%)의 배나 됐다.

현 정권 들어 20대의 박 대통령 지지율이 50%를 넘어선 건 이 의원 사태 직후가 처음이다. 줄곧 20%대였던 20대의 새누리당 지지율도 이 의원 사태 직후 30%대로 올라섰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이 의원 혐의가 사실일 것”이라고 답한 20대는 64%로 전체 응답자 평균치(61%)보다 높았다.

전문가들은 “20대가 우리 사회의 이념 지형을 보여준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20대의 보수적 입장은 ‘젊음=진보’의 등식이 낡은 것임을 말해주고 있지만, 이를 ‘20대의 보수화’로 규정하긴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보수화’보다 ‘탈진보’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20대의 탈진보는 이념보다 현실에 민감한 이 세대의 특성에 기인한다. 민주화 이후 태어나 이념적·정치적 격변 없이 자란 20대는 이전 세대와 전혀 다른 ‘탈근대 1세대’이자 사회 진출을 앞두고 저성장 장벽에 가로막힌 ‘저성장 세대’다. 이념 문제를 숙고할 이유는 줄고 등록금, 아르바이트, 취업 고민이 필수가 됐다.

당면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안보 문제에 불안을 느끼는 것도 현실의 안정을 우선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보수인지 진보인지 성향을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지만, 자기 신념의 탄생 배경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에 반응하는 20대를 탓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인문서적 출판사 후마니타스의 박상훈 대표는 “오늘의 20대를 길러낸 것은 우리 사회”라며 “한국정치의 생태를 돌아보는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