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기부… 그늘진 곳 밝힌다] 국내 유일 ‘홈리스야학’ 노숙자 ‘꿈’ 키워
입력 2013-09-28 05:13
지난 3일 오후 7시 서울 원효로 1가의 한 주택 2층으로 후줄근한 옷차림을 한 남성 6명이 모여들었다. 각자 컴퓨터 앞에 앉은 이들에게 활동가 황성철(36)씨가 컴퓨터 교육을 시작했다. 황씨가 모니터를 가리키며 “이게 뭐지요?”라고 묻자 김장기(59)씨는 “모니터”라고 외쳤다.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으며 서울 동자동 쪽방촌에서 생활하는 김씨는 ‘배움’이 낯선 듯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날 2학기 첫 수업은 1시간30분 정도 이어졌다. 김씨는 수업 후 컴퓨터를 보며 배운 내용을 복습했다.
‘홈리스 야학’은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국내 유일한 공부방이다. 2001년 노숙인 복지에 관심이 많은 사회활동가가 모여 창립한 시민단체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에서 노숙인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2007년부터 시작했다. 처음엔 장소가 마땅치 않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노숙인들에게 한글과 음악, 요리 등을 가르쳤다. 다행히 후원금이 걷히면서 지난해 월세로 공부방을 구했다. 지금은 쪽방촌,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이들까지 대상을 넓혀 컴퓨터와 영어, 한글을 가르친다. 30여명의 ‘홈리스’들이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다.
수업 전에는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 식사비는 1000원이지만 돈이 없는 이들에겐 공짜다. 월∼수요일은 수업을 하고 목∼금요일에는 홈리스 학생들과 봉사활동을 나간다. 주로 서울역이나 종각역 근처로 가 노숙인들에게 커피 등을 나눠준다.
학생들의 포부는 남다르다. 정승문(50)씨는 “컴퓨터를 배워 이혼해 따로 사는 딸들에게 가르쳐주고 싶다”고 했다. 유경부(77)씨는 “카메라를 배워 좋은 사진도 찍고, 영화도 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 강봉수(23·대학생)씨는 “어르신들의 열정을 보면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배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글·사진=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