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과거사 치유”-기시다 “수산물 금수 해제”… 자기 할 말만 한 韓·日 외교장관
입력 2013-09-27 17:52
‘어렵게’ 자리를 함께한 한·일 외교장관이 얼굴을 굳힌 채 서로 자기 할 말만 하고는 회담을 끝냈다.
뉴욕의 연례 유엔 총회에 참석한 윤병세 외교장관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26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인터컨티넨털 호텔에서 회담했다.
윤 장관은 모두발언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밝혔듯이 동북아시아 지역에서의 번영과 발전을 이루기 위해 일본 정부가 과거문제를 치유하려는 용기있는 리더십을 발휘해 달라”고 인사말을 건넸으나 기시다 외무상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어 윤 장관은 “과거사 피해 당사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가 하루속히 이뤄져 이들의 고통과 상처가 치유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기시다 외무상은 구체적인 답변 없이 “이해와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한국과의 관계를 착실히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고 답했다. 이에 윤 장관은 “역사문제로부터 기인하는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는 어떠한 시도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일본 측을 압박했지만 기시다 외무상은 역시 즉답을 피했다.
두 장관의 회담에 앞서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전 세계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지만 정작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기시다 외무상은 우리나라의 후쿠시마(福島) 등 8개 현의 수산물 수입규제 조치를 조기에 풀어 달라고 압박했다.
또 일본 기업들에 한국인 강제징용 근로자들에 대한 배상을 명령한 한국 법원의 판결과 관련, 징용 노동자 배상문제는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일이라며 한국 사법부 판결에 문제를 제기했다.
사실상 한국 측의 과거사 문제 제기를 맞받아친 격이다. 앞으로도 양국 간의 외교 협의는 한국이 위안부 문제 해결 및 역사인식을 거론하면 일본은 수산물 금수조치 해제와 징용자 배상판결 건을 제기하는 식의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초 30분으로 예정됐던 회담은 50분간 진행됐다. 그러나 회담 시작 때의 어색한 분위기만큼이나 회담 뒤에도 두 나라 외교관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기시다 외무상을 비롯한 일본 측 외교관들은 회담 뒤 심각한 표정으로 회담장을 떠났고, 한국 외교관들은 회담 직후 곧바로 회의장 밖에 모여 10여분간 구수회의를 했다. 한결같이 굳은 표정이었다.
양국 외교장관은 지난 7월 1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열린 브루나이에서 새 정부 들어 첫 양자회담을 한 바 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