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주피터의 열매
입력 2013-09-27 18:32
우리나라에서는 결혼식 후 폐백을 올릴 때 자손을 번창시키라는 의미에서 대추를 던져주는 풍습이 있다. 대추는 기후가 아무리 좋지 않더라도 꽃이 하나 피면 반드시 열매를 하나 맺으며, 나무 한 그루에서 아주 많은 열매가 열리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의 경우 요즘 한창 수확철을 맞은 호두를 신랑 신부에게 던져 자손의 번성을 축원하는 풍습이 있었다. 또한 북유럽에서는 그리스도교의 모든 성인을 기념하는 축일인 만성절에 젊은이들이 호두로 사랑 점을 치는 풍습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르면서 불속에 호두를 던져 터지는 정도에 따라 상대방도 자기를 좋아하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왜 하필 사랑과 관련된 풍습에 호두가 자주 등장하는 것일까.
원래 호두는 심장병 예방에 좋은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식품에 특정 건강 효과를 표시하는 것이 합법적으로 허용된 미국에서는 호두 겉포장에 “꾸준히 호두를 섭취하면 관상동맥질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내용의 문구가 적혀 있다.
실제로 호두는 생으로 먹든 볶아서 먹든 상관없이 견과류 중에서 가장 많은 폴리페놀을 함유하고 있다. 강력한 항산화제 성분인 폴리페놀은 혈액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심장질환의 위험을 감소시키며 혈류를 개선시키는 데 효과가 있다. 또한 니코틴을 해독하는 기능과 몸에 쌓여 있는 독소를 빼내며 노화방지 작용을 한다.
그런데 호두에 얽힌 사랑의 비밀도 최근 연구결과 속속 밝혀지고 있다. 미국 UCLA 대학 연구팀의 실험 결과 매일 호두를 먹은 남성들은 정자의 활력이나 운동성 등이 좋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정액의 농도도 짙은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들의 혈액 속에서는 정자의 성숙에 영향을 미치는 지방산 함량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여성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이 식물체 중에서 최초로 호두나무의 잎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난소에서 분비되는 프로게스테론은 임신에 관여하는 성호르몬으로서 동물 중에서도 척추동물 이상의 고등동물에게서만 발견되는데, 암수한그루인 호두나무에 이 호르몬이 존재하는 이유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밖에도 호두는 전립선암 및 성인 당뇨병 예방에 도움이 되며,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 상황에 처했을 때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폭스뉴스는 ‘매일 먹어야 하는 음식 6가지’ 중 하나로 호두를 꼽았다. 고대 로마에서는 주피터에게 제사를 올릴 때 바친다고 해서 호두를 ‘주피터의 열매’라고 불렀다는데, 정말 그만한 자격이 있는 셈이다.
이성규 (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