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전정희] 박 대통령 ‘선혜법’

입력 2013-09-27 18:31


1608년 선혜법(宣惠法)이 제정돼 경기도를 대상으로 시범 실시됐다. 소위 대동법이다. 광해군 즉위년의 일이다. 2013년 9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 복지 공약 후퇴에 대해 사과했다. 국무회의에서 “어르신 모두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결과에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나라가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는(宣惠)’ 일은 17세기 초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재원은 없고 보살펴야 할 이들은 많다 보니 통치자는 늘 골머리가 아팠다. 대동법과 기초연금안은 그 출발이 통치자의 다급함에서 나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동법의 경우 임진왜란 와중에 대공수미법(大貢收米法)이란 이름으로 잠시 시행됐었다. ‘땅주인에게 쌀로 세금을 받는다’는 간단한 제도지만, 당시로선 혁명적 발상이었다. 이 제도가 시행되기 전까지는 땅이 있거나 없거나 백성이면 누구나 똑같이 공납(貢納)을 했다. 요즘으로 치자면 재벌 가구나 기초생활수급자 가구나 같은 금액의 세금을 낸 것이다.

대동법은 왜란 극복과 동시에 폐지됐다가 광해군에 의해 제대로 추진됐다. 광해군은 양반 5%가 전 국토의 65% 이상의 부와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조세개편이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양반들은 버는 만큼, 가진 만큼 세금을 내는 것이 당연한데도 임금을 내쫓으면서까지 저항했다. 그럼에도 이 법이 실시될 수 있었던 데는 개혁정치가 이원익, 김육, 조익 같은 이들의 공이 컸다.

지난해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으로 지지율을 높였다. 한데 집권 후 소득하위 70% 노인에게만 지급하는 안으로 축소됐다. 재원 마련이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8월 재원 마련 등을 위해 연간 3500만∼5500만원의 소득자를 증세 소득 기준으로 보고 세제 개편안을 추진했다가 민심의 역풍을 맞고 포기했다. ‘복지 후퇴’의 결정타였다. 국민은 중산층 기준이 연소득 6000만∼7000만원으로 알고 있었는데 3500만원까지 내려온 것에 반발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가 “당신들도 늙지 않느냐. 그때 누구에게나 기초연금이 필요하다”는 등의 명분으로 설득하면 가능한 일이었다고 본다. 문제는 정작 다른 데 있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 말대로 봉급생활자의 월급봉투를 겨냥한 것과 재벌 대기업을 열외로 한 안이었기 때문이다. 대동법은 양반의 저항이 심해 전국 단위 시행에 100년이 걸렸다. 1708년 숙종 때 황해도를 마지막으로 전국에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소득 있는 자가 더 내야 한다”는 명분에도 곡창지대 호남, 충청의 지주들은 정치인과 결탁해 저항했다. 그래서 경기도에 이어 산간 강원도를 둘째 실시대상으로 삼는 등의 꼼수를 부렸다. 기득권층의 저항은 실로 집요하고 매서웠다.

어찌 보면 세제 개편안에 반대하는 우리도 꼼수를 부리며 저항하고 있는지 모른다. 마치 국민연금 시행 초기 “먹고살 돈도 없는데 무슨 연금이냐”는 식의 저항 말이다. 국민연금에 반대했던 사람마저 지금은 그 연금에 의존해 기본적 생활을 유지한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 ‘선혜법’의 해법은 없는 걸까. 우선 대통령이 “죄송한 마음”이란 말로 끝내기보다 “의욕이 앞서다 보니 과도한 공약을 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먼저 일 듯싶다. 명분 있는 정책이자 공약이었기 때문에 ‘인정’하고 ‘사과’하면 국민의 조세 저항은 줄지 않을까. 국무회의에서 지나가듯 하는 사과보다 TV 출연 등과 같은 방법으로 국민 앞에 흉금을 털어놓은 후 기초연금, 무상보육, 무상교육 등의 문제를 재추진하면 될 일이라고 본다.

전정희 디지털뉴스센터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