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손가락이 두 개뿐인데 세 개는 한국에 있어요”… 美 참전용사에 찬양 바칩니다
입력 2013-09-27 17:36 수정 2013-09-27 19:14
레위성가합창단 이용희 단장
벌써 27번째다. 매년 여름과 겨울, 미국을 다녔다. 그가 찾아간 미국인 교회엔 6·25전쟁에 참전했던 용사들이 앉아있었다. 합창단은 그들 앞에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나의 가는 길’ 등을 영어로 불렀고 그는 지휘봉을 움직였다. 노래가 나오자 용사들은 ‘천상의 소리’에 눈물을 흘렸다. 성가가 끝나자 그는 말했다. “여러분 덕분에 우리가 있습니다. 자유를 위해 싸워준 것에 감사하고 복음을 전해줘서 고맙습니다.” 용사들은 생전 처음 듣는 감사 인사에 또 한번 눈물을 글썽였다. 13년째 미국 교회 등 100여곳을 다니며 참전용사들에게 성가를 들려주고 있는 레위성가합창단 이용희(70) 단장 이야기다.
레위성가합창단이 결성된 것은 이 단장이 1994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다. 조지아주 애틀랜타 인근 교회에서 우연히 참전용사를 만났다.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어요. 손가락이 두 개밖에 없었는데 세 개는 낙동강에 두고 왔다는 거예요. 자기 마을에서 8명이 참전해 7명이 죽었대요. 충격이었어요.”
6·25 당시 이 단장은 여덟 살. 고향인 경기도 용인 집 뒤엔 미군부대가 있었다. 미군들에게 통조림과 초콜릿 등을 얻어먹으면서 미국이 고맙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런 희생이 따랐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어떤 식으로든 감사하고 싶었다. 귀국길 비행기에서 이 단장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음악으로 보답하자’고 결심했다.
연세대 작곡과 출신인 이 단장은 중학교 음악교사로 평생 일했고 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봉사했다. 레위성가합창단 설립 이전엔 전문 합창단 트레이너로도 활약했다. 인생 후반부는 다르게 살고 싶었다. 2000년 초부터 단원을 모집했고 기교보다는 진심으로 노래하라고 주문했다.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모였고 그렇게 순회 연주가 시작됐다.
이 단장이 지금까지 만난 참전용사는 수백명에 달한다. 모두 80세가 넘는 고령자로 미국 교회를 비롯해 은퇴군인 양로원까지 직접 찾아가 노래했다. 은퇴군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은 하와이로 3년 전 여름에는 123명이나 참석했다. “미국교회에 가서 성가를 노래하면 농담 반 진담 반 그래요. ‘당신들은 돌아온 한센병 환자’라고요. 예수님이 한센병자 10명을 고쳤는데 한 사람만 돌아왔잖아요.”(눅 17:11∼19)
초창기에는 연주할 교회를 찾기가 어려웠다. 첫회 연주회를 준비하면서 미국 전역의 수백개 교회에 이메일을 보냈으나 2개 교회만 응답이 왔다. 뉴멕시코주 타오스의 인디언제일침례교회와 뉴욕주 버팔로의 랭커스터장로교회였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이 단장과 단원들은 더 많은 미국교회에 가기를 기도했다. 응답일까. 해가 거듭되면서 방문 교회도 늘었다. 한 번은 뉴멕시코주 트루스오어컨시퀀시스의 한 교회에서 연주했는데 이 교회 목사가 동료 목사에게 전화해 “인크레더블 콰이어(incredible choir)가 한국에서 왔다”며 소개했다.
오클라호마주의 클레몬트교회는 담임목사의 선친이 참전용사였다. 성도들은 사랑이 많아 합창단원을 자신들의 집에 머물게 했다. 랭커스터교회에서는 킴이라 불리는 전쟁고아 출신 한국인도 만났다. 건축가로 성공한 그는 자신의 20에이커(8만937㎡) 넓이의 집에 합창단을 초대했다.
이 단장은 연주회로만 그치지 않았다. 자주 방문했던 미국교회 신자들을 한국으로 초청했다. 지금까지 3개 교회 성도들이 다녀갔다. “미국교회에 가면 신세를 집니다. 헌금도 해주시고 잠자리도 마련해주죠. 보답 차원에서 그분들을 한국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3년 전에는 방문하는 미국교회 성도들에게 일일이 선물도 했다.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나무에 앉아 있는 문양이 들어간 실크 스카프였는데 눈시울을 적시는 교인들이 많았다. 이 단장은 이 같은 공로로 2009년 미국 테네시 주지사로부터 명예시민권과 감사장을 받았다.
“매번 연주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때문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줬다는 것이 가장 큰 고마움이고 두 번째는 나라를 구해준 것이지요.”
합창단원도 그동안 500여명이 참가했다. 자비를 들여 연주회에 참가함에도 불구하고 합창단 취지가 좋아 모두들 헌신하는 마음으로 동참하고 있다. 매회 새로운 단원을 모집해 떠나지만 두세 번 참가하는 경우가 많고 다섯번 이상 참가한 단원도 여럿이다. 28회 순회 연주회는 내년 1월 16일부터 시작된다. 현재 단원을 모집 중이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