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 합동) 총회가 열린 경기도 수원과학대 신텍스 컨벤션. 한 무리의 여성들이 총회장 입구에서 양복을 입은 목사와 장로들에게 정중하게 인사하며 분홍색 전단지를 나눠줬다. 전단지엔 ‘제98회 총대님께 드리는 글’이 담겼다. 이날 전단지를 돌린 이들은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총신신대원) 여동문들이다. 이들은 ‘여성목사 안수 논의’와 ‘성경적 여성관의 신학적 재정립’을 총회에 요청코자 10여년 전부터 매년 남성뿐인 총대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며 전단지를 돌리고 있다.
서영희 총신신대원 여동문회 대표는 “하나님께서 언젠가 때를 주신다는 믿음으로 매년 총회장 앞에서 총대들에게 여성 안수를 호소하고 있다”며 “총대들이 전단지를 돌리는 우리를 냉소적으로 대하지만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부합하는 여성 안수가 교단에서 실현되는 그날까지 계속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 내 다수를 차지하지만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없어 목회에 제약을 받거나 교단 요직에 접근할 수 없는 ‘교회의 다수 을(乙)’ 여성 문제. 이는 그간 ‘불공정 관행’으로 교회 안팎에서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올해 9월 총회에서 기독교한국침례회가 7년간 교단에서 논란이 돼 왔던 여성목사 안수를 통과시키기도 했지만 여전히 여성은 교회 안에서 차별받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가부장적 제도와 무관치 않다. 교회에서 지도자보다 봉사자로 섬기는 것을 미덕으로 배운 여성들에겐 갑보다 을의 역할이 익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행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교회 안 양성평등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온도차는 있지만 적지 않은 교단들이 매년 총회에서 교회 내 여성의 지위 증진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왔다. 1994년 여성목사 안수를 허용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 통합) 총회는 올해 교단 내 여성 사역 개발을 위해 ‘여성위원회 신설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긍정적 결과만 얻은 건 아니다. 2011년 여성목사 안수를 허용한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은 올해 총회에 헌의된 여성장로제도안을 ‘시기상조’란 다수 총대들의 의견에 따라 기각했다. 예장 통합 총회에서는 ‘총대 20명 이상을 배출하는 노회는 의무적으로 여성 목사와 장로 1명씩을 총회로 파송해 달라’는 내용이 담긴 여성총대할당제가 건의됐으나 부결됐다.
보수 교단의 대표 격인 예장 합동 총회에서는 ‘여성목사 안수불가’ 입장을 재확인했다. 올해도 총회 첫날부터 신대원 여동문회가 총회장 밖에서 ‘교회·선교지 실정에 맞게 여성(목사) 안수를 논의 할 것’과 ‘현 시대에 맞는 성경적 여성관을 신학적으로 정립할 것’을 요구했으나 총회 논의 과정에 반영되지 못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예장 대신) 총회 역시 올해 총회에서 여성목사 안수불가 입장을 천명했다.
여성목사 안수 이후에도 유리 천장 있어
교단법에 여성목사 안수가 보장됐다고 해서 단번에 양성평등이 실현되는 건 아니다. 교단 여선교회 관계자들은 여성목사의 수는 늘었지만 총회 참여와 교단의 요직 진출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는 1931년 국내 최초로 여성목사 안수를 법적으로 보장한 교단이나 총대 구성에 있어서는 남성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지난해 기감 총대 1392명 가운데 여성 총대는 65명에 그쳤다. 5%가 채 안 되는 비율이다. 이규화 기감 여선교회전국연합회장은 “교리와 장정에 총대 선발과 모든 의결기구 참여에 있어 ‘여성 비율을 30%로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지만 ‘할 수 있다’는 애매한 표현 때문에 사실상 지켜지지 않고 있다”면서 “총회의 저조한 여성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여성에게 더 기회를 주는 법적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로 교단 내 양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한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총회의 여성 참여율은 타 교단에 비해 비교적 높다. 2013년 현재 기장 총대 724명 가운데 여성 총대는 51명(7%)에 달한다. 그러나 인금란 전국여신도회 총무는 아직도 총회 내 여성 지도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총회 상임위원회나 이사회에 여성위원이나 여성이사를 1명 이상 포함하라는 헌의를 냈고, 올해 통과됐다. 여성 총대는 늘었지만 핵심 쟁점을 논의하는 곳엔 여성 참여가 매우 저조하다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했기 때문”이라며 “총회 참여도 중요하지만 여성을 위해 실제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에 자리를 확보해 여성 리더십을 키우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교역자의 열악한 처우도 심각한 문제다. 예장 통합 총회 전국여교역자연합회가 지난해 전국 여교역자 395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8%가 사례비로 올해 최저임금(월 101만5710원)에 못 미치는 100만원 미만을 받는다고 답했다. 무보수로 사역한다는 비율도 15.4%에 달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대형 교회인 서울 A교회 1년차 여성 전도사 사례비는 120만원 선이다.
김혜숙 전국여교역자연합회 사무총장은 “목회자에 따라 다르나 여교역자의 사례비를 결정할 때 남성에 비해 낮게 책정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미혼인데 돈 쓸 곳이 어디 있느냐’며 여교역자에게 사례비를 적게 주거나 남교역자와 달리 사택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가장 빈번히 일어나는 차별 사례”라고 말했다.
제도 마련·새로운 성경 해석 함께 가야
그렇다면 교회 내 양성평등은 과연 먼 나라 이야기인가. 전문가들은 여성 참여를 위한 제도 마련과 성역할 인식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미숙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총무는 “교단이 변해야 교회가 변할 수 있으므로 각 교단에 양성평등위원회나 여성위원회를 설치해 소수인 여성이 차별 없이 총회와 당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양성평등 제도가 교단에 의무화돼 교회 내 여성의 역할이 다양해지면 고정된 성역할 같은 인식 개선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성의 눈으로 성경 해석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소영 한국여신학자협의회 공동대표는 “일부 구절만 보고 성역할을 구분짓는 협소한 성경 이해는 남녀 간 불평등과 대결 구도를 불러올 뿐”이라며 “새로운 성경 해석으로 어느 한쪽의 성만 희생하고 섬기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동등한 인격체로 창조된 남녀가 서로를 세워주도록 교회 문화를 바꿔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甲과 乙의 사회 교회는 평등한가] 여성은 乙이랍니까?
입력 2013-09-27 17:14 수정 2013-09-27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