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인호 작가 빈소 조문 행렬… “한국 문단의 큰 별, 별들의 고향으로” 애도

입력 2013-09-26 18:00

25일 별세한 최인호 소설가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는 26일 각계 인사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고인과 가까웠던 이수성 전 국무총리는 이날 오후 빈소를 찾아 “늘 바르게 살아온 고인이 그립다”며 “하나님이 이제 편안하게 쉬게 하실 것”이라는 말로 추모의 뜻을 표했다.

소설가 출신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천막농성 차림 그대로 빈소를 찾아와 “문단을 위해서나 당신의 삶을 위해서나 좀 더 우리와 함께 했어야 할 분인데 안타깝다”고 애도했다. 김 대표는 “등단했을 때 알려지지 않은 김한길을 최초로 인정해주고 중앙 문단에 소개해주시며 각별히 저를 이끌어줬던 선배”라며 “문단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큰 별이었다고 생각한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뇌졸중으로 실어증세가 있는 김승옥 소설가도 조문했다. 김씨는 수첩에 ‘별들의 고향 원작 최인호 각본 김승옥 감독 이장호’라고 적으며 1970년대부터 계속된 고인과의 친분을 회고했다. 빈소를 찾은 김병익 문학평론가는 “건강을 회복하고 더 좋은 작품을 쓰려니 기대했는데 이리 일찍 가시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과 연세대 동문회장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도 빈소에 다녀갔다. 최인호 작가는 연세대 영문과 출신이다. 이 전 장관은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해 있는 중에 왔다”며 “문학가들이 문단 외 활동을 많이 하는데 최인호는 문단 외에 다른 일은 하지 않았다. 이 시대 마지막 남은 순수한 작가가 떠났다”고 애도했다. 또 “고인은 한류 문화라든지 이런 것의 물꼬를 튼 사람으로 제1세대 청년문화를 이끈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최인호님의 부음을 접하며 애도의 마음과 함께 생전에 함께했던 기억을 떠올린다”며 “투병 중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으며 ‘하루하루가 축제’라고 했던 그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작가”라고 말했다. 고인과 함께 197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꼽혔던 박범신 소설가는 트위터를 통해 “그이는 작가로 태어났고, 그렇게 살았고, 살고 있다고 나는 느낀다”며 “떠나고 남는 게 뭐 대수겠는가. 내겐 아직도 타고 있을 그이의 불꽃이 보인다”면서 깊은 아쉬움을 표했다.

조화도 줄을 이었다. 강창희 국회의장과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배우 윤정희 부부, 강우석 감독 등이 조화를 보냈다.

앞서 25일 밤 빈소를 찾은 김홍신 소설가는 고인을 ‘형’이라 부르며 붉어진 눈시울로 회상했다. 그는 “지난해 여수로 향하던 비행기에서 내리기 직전, 우연히 형을 만나 비행기문이 열리기 전까지 2∼3분 동안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며 “공항 로비로 나오자 형은 내게 ‘걱정 마, 나는 괜찮아’라며 내 볼에 뽀뽀를 했고 그 순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고 회고했다. 이어 “형은 죽었지만 가족과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는 영원히 살아있는 존재다. 형, 죽은 거 아니다”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배우 안성기씨는 “고인은 1980년대 영화계에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다”며 “늘 사랑하던 주님 곁으로 잘 가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인의 소설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등 5편을 영화로 만든 배창호 감독은 “지난 가을 지인의 결혼식장에서 인호 형을 만난 적이 있는데 육체적으로는 쇠약했지만 인내심을 발휘해서인지 그 영혼은 굉장히 맑고 창작의욕이 불타올랐다”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이외수 소설가는 트위터를 통해 “천재성이 번뜩이는 작품들을 많이 쓰셨지요. 아직 더 활동할 수 있는 나이인데 너무도 안타깝습니다”라고 애도했다.

한편 최 작가의 주치의였던 강진형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늘 만날 때마다 껴안아 주셔서 의사인 내가 오히려 기를 받았다”며 “의식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돌아가시는 날까지 환하게 웃으신 사랑이 많은 분이었다”고 고인을 회상했다. 또 “투병 중 병원 21층 병동에서 여명을 바라보며 본인의 눈에 비친 도시의 모습에서 시상을 얻고, 치료 받고 있는 본인의 모습을 담아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2011년)를 쓴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