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으로 주는 ‘빈곤층 식품지원제’ 영양가 없다
입력 2013-09-27 05:54
최모(72·여)씨는 서울의 한 쪽방촌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한다. 극빈층보다 형편이 조금 나은 ‘차상위계층’이다. 작은 단독주택을 갖고 있어 노령연금이나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삶은 팍팍하다. 구멍가게에서 버는 돈은 월 40만∼50만원. 가게 월세 20만원을 내고 남는 돈으로 생활한다.
식사는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밥에 김을 싸먹는 부실한 식단이다. 4년 전 유방암 치료 후유증으로 영양실조를 겪었던 최씨는 지금도 제대로 된 영양 섭취를 못하고 있다. 그는 “식료품 지원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기초생활수급자도 아니고 절차도 잘 몰라 신청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모(61)씨는 기초생활수급자다. 정부에서 월 47만원을 지원받는데 38%인 약 17만원이 식료품비 명목으로 지급된다. 하지만 방세 20만원을 내고 남는 돈 가운데 식비로 들어가는 건 고작 5만∼6만원이다. 이씨는 밥과 김치 혹은 라면으로 매 끼니를 때운다. 아직 65세가 안돼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무료로 생필품을 공급하는 ‘푸드마켓’도 이용하지 못한다. 이씨는 “고기와 과일을 맛본 지 너무 오래됐다”며 “식료품비 외에 식품과 직접 교환할 수 있는 티켓이라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초생활수급자 김모(54)씨는 결핵 후유증으로 폐 기능이 약해 숨을 쉬기도 벅차다. 일은 꿈도 못 꾼다. 당뇨 후유증에 치아는 절반쯤 빠졌다. 김씨 역시 기초생활급여를 받지만 충분한 영양을 챙기지 못한다. 얼마 전 만성적인 영양결핍에 빈혈로 쓰러져 보건소에서 영양제를 맞기도 했다. 김씨는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 음식이 좀 지원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이계임 연구위원 등은 최근 발표한 논문 ‘취약계층 식품지원제도 운영 실태 분석’에서 정부의 식품지원제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식품지원제도는 영양결핍이 우려되는 노인가구·결손가구 등에 식료품비나 식품을 지원하는 사업을 말한다.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비 지원, 정부양곡지원, 영양플러스, 기부식품제공, 노인돌봄서비스, 장애인활동보조지원 등 10가지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식품지원제도 대부분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지원 대상자 선정 기준을 따르고 있어 부양가족이나 재산 때문에 제외된 차상위계층은 배제돼 있다. 전체 식품지원제도 예산 중 45.2%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기초수급자 식료품비 지원도 돈으로 지급되다 보니 다른 용도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빈곤층 상당수가 영양 결핍 상태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07∼2010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빈곤층과 차상위계층의 영양 섭취량은 필요추정량의 90%에 못 미치며 칼슘 섭취량은 권장량의 50%에 불과하고, 리보플라빈과 비타민C도 권장량 기준을 밑돌았다. 또 기초생활수급자의 28.7%,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거나 비수급자인 사람들의 18.1%가 영양 부족 상태였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식품지원이 중복되거나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법령을 정비해 선택적이고 직접적인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