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불공정 상품 아니다”… 대법원, 은행 손 들어줘
입력 2013-09-26 17:43 수정 2013-09-26 22:55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이른바 ‘키코(KIKO·Knock In Knock Out) 사태’에 대해 대법원은 사실상 은행 측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양승태 대법원장)는 26일 키코 상품에 가입해 피해를 입은 수출기업들이 시중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소송 4건에 대한 상고심에서 키코 논란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 이 기준에 따라 대법원은 수산중공업이 우리은행 등을 상대로 낸 소송 등 2건에 대한 원심 판결을 확정하고 나머지 2건은 파기환송했다.
키코는 환율이 떨어지면 손해를 보는 수출기업들의 피해 방지 명목으로 만들어진 파생금융상품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수출 중소기업들은 미리 정한 환율이 낮아질수록 많은 이익을 볼 수 있는 키코 상품에 가입했다. 그러나 2008년 터진 금융위기로 환율이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기업들은 거꾸로 큰 손실을 입게 됐다. 784개 중소기업이 3조2247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
대법원은 우선 키코 상품이 불공정한 상품은 아니라고 전제했다. 피해기업들은 그동안 “키코는 불공정한 상품이며, 계약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계약이 불공정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당시 상황을 감안할 때 키코는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정당한 환헤지 상품에 해당한다는 은행 측의 주장을 인정한 것이다. 은행은 계약 무효화로 피해액 전부를 배상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한 셈이다.
대법원은 그러나 키코가 위험한 금융상품임에는 틀림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장외파생상품은 예측과 다른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손실이 과도하게 확대될 수 있다”며 키코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때문에 은행은 키코 계약을 체결할 때 기업에 계약의 주요 내용, 이익과 손실 발생 가능성 등에 대한 설명을 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 기업의 경영상황이 키코에 적합하지 않다면 은행이 계약을 권유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다만 키코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있는 기업이 단순 투기 목적으로 가입한 경우에는 은행이 설명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봤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향후 소송에서 키코 계약 당시 위험성에 대해 은행이 얼마나 충분히 설명했느냐에 따라 피해액의 일부만 배상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기준은 현재 각급법원에 계류 중인 270여건의 관련 소송에 적용될 전망이다. 그동안 대법원 판례가 없어 재판부마다 상이한 결론을 도출, 소송 관련자들의 혼란을 가중시켜 왔다. 다만 사건마다 구체적인 계약 상황이 달라 기업이 받을 수 있는 배상 정도를 일괄적으로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키코가 불공정계약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에 금융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개별 은행들의 희비는 엇갈렸다. 원고패소 판결 확정으로 금전적 보상을 할 필요가 없어진 우리은행 측은 다른 소송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 예측했다. 반면 세밀정밀에 피해액의 30%를 지급하게 된 신한은행 측 관계자는 “설명의무 위반으로 피해액의 30%인 9억3800만원을 물어주게 됐다”며 “대법원 판결이 났으니 더 이상의 언급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정현수 박은애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