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며느리의 선언
입력 2013-09-26 17:50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결혼한 친한 동생이 있다. 종갓집 버금가게 일 많은 집으로 시집간 그녀는 손가락의 연필 굳은살이 빠지기도 전에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칼질을 하고 전을 부쳐야 했다. 차례에 제사, 어르신들 생신은 기본이고 돌잔치, 결혼식, 개업식 등 각종 친인척 행사까지. 매번 프라이팬부대로 동원되어 시댁에 다녀올 때마다 터지기 직전의 풍선마냥 아슬아슬하더니 이번 추석을 앞두고 기어이 터져버렸다.
“이제부터 공평하게 딸 노릇도 하면서 살 거야.” 결혼생활 10년 동안 명절 때마다 며느리로 살았으니 올해부터는 번갈아 친정에도 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응원의 문자를 보냈지만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이 남았다. 뒷감당에 대한 걱정스러움. 오랜만에 딸과 함께 명절을 보내게 된 그녀의 어머니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으셨을 터. 송편 하나 마음 편히 드실 수 있었을까. 행여 사랑하는 딸이 시댁식구 눈 밖에 나서 고생하지 않을까 마음이 쓰여 내내 바늘방석, 좌불안석이셨을 것이다.
얼마 전에 읽은 어느 며느리의 무용담이 생각났다. 시부모의 출가외인 타령에 10년 동안 명절날 단 한 번도 친정에 가지 못했던 며느리가 새색시가 된 시누이를 통해 시원하게 되갚았다는 얘기. “아가씨, 어디 남의 집 며느리가 명절날 친정에 오는 못 배워먹은 짓을 합니까. 사돈댁에서 얼마나 욕을 하시겠어요. 당장 돌아가세요.” 평소 며느리에게 본데없다며 가정교육 운운했던 시부모는 그날 오매불망 기다렸던 딸이 문전박대당하는 꼴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던가. 10년을 기다린 치밀한 복수전이라니. 잠시 지어낸 글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누구 하나 사실 여부를 따지는 사람 없이 속 시원하다, 후련하다는 댓글들만 가득했다. 그만큼의 현실감이 느껴졌다. 며느리는 아직도 고단한 자리요, 친정 부모는 여전히 아들 못 가진 죄인이었다.
아들이든 딸이든 똑같은 자식이고, 애면글면 키운 자식 보고 싶고 걱정되는 것은 다 같은 부모 마음 아닌가? 그 마음 몰라주니 딸 가진 부모는 얼마나 서러울까? 야속한 마음 달랠 길 없는 며느리와 그런 아내를 지켜보는 아들의 마음까지, 모두가 괴롭다. 결국 다 같이 즐거워야 할 명절에 헛헛한 웃음만 가득하다. 온 가족이 행복한 명절, 어렵지 않다. 며느리에게 딸의 자리를 돌려주는 것, 그것부터 하면 된다. “아가, 다음 명절은 친정에서 쇠렴.” 망설이지 말고 말해보자. 더 많이 행복해질 것이다.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