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태원준] 아이폰 심리학
입력 2013-09-26 17:48
혁신이 사라졌다는 혹평을 뚫고 애플의 새 아이폰이 엄청나게 팔리고 있다. 아이폰 5S와 5C는 발매 후 첫 주말에 900만대가 팔렸다. 아이폰5의 500만대 기록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뉴욕 맨해튼 5번가를 비롯해 각국 애플스토어 앞에는 노숙 행렬이 늘어섰다. 온라인 물량은 삽시간에 매진됐고 운 좋게 구입한 이들은 경매 사이트에서 웃돈 붙여 판다.
애플은 이번에 8가지 아이폰을 출시했다. 고급형 5S는 금색·흰색·검정색의 3가지, 저가형 5C는 빨강·파랑·노랑·초록·흰색의 5가지 색깔로 제작됐다. 단연 인기를 끈 건 금색 5S다. 이 ‘골드 아이폰’은 판매 개시 10분 만에 매진됐다. 이제 다음달까지 기다려야 살 수 있다. 이베이에 경매로 나온 549달러짜리 16GB 제품은 무려 1만100달러에 낙찰됐다.
골드 아이폰도 흰색과 검정처럼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 새 운영체제가 탑재됐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는데도 사람들은 5S를 사려 밤을 새웠고, 알루미늄에 입힌 색깔만 다를 뿐인데 너도나도 금색을 찾는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예상치 못한 현상이 당황스러운지 미국의 많은 IT 전문가와 블로거들이 인터넷에 글을 쏟아냈다. 몇 가지 재미있는 분석이 있다.
아이폰 5S·5C 출시일에 베이징 애플스토어의 긴 줄에 서있던 20대 중국인은 서양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무조건 골드 아이폰을 사겠다. 그 안에 뭐가 들었든 상관없다. 중국인은 금을 좋아한다.” 애플은 이번에 처음으로 중국을 아이폰 1차 판매 국가에 포함시켰다. 최대 시장을 직접 겨냥하면서 중국인이 좋아하는 금색을 입힌 게 제대로 먹혔다. 금을 부(富)의 상징으로 여기는 중국인들에게 골드 아이폰이 ‘들고 다니면 뭔가 있어 보이는’ 물건으로 비쳤다는 것이다.
아이폰은 3·4·5세대로 변신할 때마다 외형이 달라졌다. 둥글둥글하던 3과 달리 4는 각이 졌고 5는 4보다 길다. 얼핏 봐도 저 사람의 아이폰이 최신형인지 아닌지 알 수 있었다. 미국의 한 IT 전문 블로거는 5S 모델 가운데 이런 효과를 주는 건 금색뿐이라고 했다. “흰색 5S는 흰색 5와, 검은색 5S는 검은색 5와 잘 식별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내가 ‘최신 5S 쓰는 사람’임을 쉽게 알리려면 금색을 택하는 수밖에 없다.”
미국 인터넷신문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애플, 인간을 두 계급으로 나누다’란 제목의 글을 실었다. “아이폰은 그것을 가진 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는 물건이었다. 사회적 지위와 성격을 대변하는 액세서리인데 이제 아이폰 사용자도 골드 아이폰과 플라스틱 아이폰(저가형 5C는 재질이 플라스틱이다)의 두 계급으로 나뉘게 됐다. 금과 플라스틱. 당신이라면 무엇을 택하겠나? 골드 아이폰은 구치 핸드백이나 돌체앤가바나 선글래스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런 말을 했다. “소크라테스와 한 끼 식사할 기회를 준다면 애플이 가진 모든 기술을 그 식사와 바꾸겠다.” IT에 인문학을 접목시킨 잡스의 이 말을 작가 이지성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찾아 끝없이 질문하다 ‘가장 확실한 건 내가 진리를 모른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내가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에서 진정한 혁신이 시작된다. 경쟁자들이 컴퓨터의 기능과 가격을 고민할 때 잡스는 소비자가 원하는 것의 본질을 계속 질문했다.”
잡스가 찾아낸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뭐였을까. 골드 아이폰 현상은 그 답을 보여줬다. 사람들은 남보다 ‘있어’ 보이고 싶어 한다. 잡스가 단순한 디자인으로 채워준 이 욕망을 팀 쿡은 색깔로, 좀더 노골적으로 충족시켰다.
태원준 사회부 차장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