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증세 없는 복지’에 맞춘 적자예산안

입력 2013-09-26 17:51 수정 2013-09-27 00:42

성장률 3.9%는 일방적 낙관 아닌가

정부가 26일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은 나라곳간을 축내더라도 경제활성화와 복지 확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고민이 엿보인다. 내년 총수입은 370조7000억원으로 올해보다 0.5% 줄어드는데 총지출은 357조7000억원으로 4.6%나 늘렸다. 돈이 안 들어오면 지출을 줄이거나 증세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빚을 내 적자살림을 하겠다는 것이다. ‘증세 없는 복지’를 억지로 꿰맞추려다 보니 나온 궁여지책이다.



올해 24조원에 이어 내년에도 26조원의 관리재정수지적자가 예상되면서 지난 정부가 제시한 2014년 균형재정은 물건너갔다. 정부는 임기 내인 2017년까지 재정수지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0.4% 수준으로 맞추겠다고 했지만 경제성장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적자폭은 더 커질 수 있다. 정부가 바뀌면서 정책의 일관성이 훼손되는 것은 큰 문제다. 경기상황이나 당면한 현실에 맞춰 미세조정은 필요하지만 큰 틀을 흔드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복지예산은 내년에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는다. 정부는 기초연금 공약을 수정하고 반값등록금 시행시기를 1년 늦추는 등 복지예산을 일부 조정했다. 하지만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복지수요와 대통령의 복지공약을 충당하려면 근본 해법이 필요하다. 정부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23조3000억원으로 책정해 공약가계부상의 당초 계획보다 2조원가량 덜 줄였다. 2008∼2013년까지 4대강 사업을 제외한 평균 SOC 투자규모가 22조4000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많다. 경기회복을 위해 SOC 구조조정을 미뤘다고 하지만 지역민원성 사업들이 많아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못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SOC 투자가 경기회복을 이끈다는 것은 과거 개발연대에나 가능했지 전 정권에서도 통하지 않았다.

9분기 만에 0%대 성장을 벗어나긴 했지만 경기회복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내년 성장률을 3.9%로 전망한 것도 우려스럽다. 성장률 전망치는 예산편성과 재정운영계획의 근간이 되는 만큼 족집게처럼 맞출 수는 없더라도 가급적 정확해야 한다. 정부는 내년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가 좋아지면 우리 경제도 반등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이에 따른 신흥국들의 위기, 아베노믹스 등 위험요인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의문이다. 지난해 이맘때 예산안을 짤 때도 4% 성장전망을 토대로 예산안을 짰다가 몇 달 만에 2.3%로 낮추면서 추경 예산안까지 편성하지 않았는가.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예산안의 허점은 없는지, 적재적소에 국민 세금이 쓰이도록 짜여졌는지 꼼꼼하게 심의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행여 예산철마다 반복되는 지역구 민원성 예산인 ‘쪽지예산’을 끼워넣을 생각은 아예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