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약 번복 유감이지만 잘못은 속히 바로잡아야

입력 2013-09-26 17:50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기초연금 공약 축소와 관련해 사과의 뜻을 표명했다. 박 대통령은 내년도 정부예산안을 의결하는 국무회의 말미에 “그동안 저를 믿고 신뢰해주신 어르신들 모두에게 지급하지 못하는 결과가 생겨서 죄송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 기자회견 등의 직접적 형식이 아니라 국무회의 발언이란 간접적 소통 방식을 취해 사과한 것은 아쉽다. 하지만 논란을 빚던 사과 수위와 관련해 ‘죄송한 마음’이란 비교적 솔직한 표현을 택한 것은 다행스럽다. 공약의 신뢰를 중시하는 태도가 반영된 표현이라 믿는다.

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번복하며 사과하는 일이 또 발생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1992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쌀 시장 수호 공약 번복을 들지 않더라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각제 개헌을 포기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되자 각각 사과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한반도 대운하와 세종시, 동남권 신공항 건설 등의 공약을 포기하면서 국민 앞에 사과했다.

박 대통령의 이번 사과가 마구잡이식 공약경쟁 풍토가 사라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각 후보나 정당이 현실성을 감안해 공약을 제시하고 선거 국면에서 이에 따른 재원 조달 방안 등을 꼼꼼히 검증할 수 있는 제도도 마련돼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사과하면서 “이것이 공약의 포기가 아니다”면서 미이행 공약들을 임기 내에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경기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가능성이 불투명해 보인다. 공약 남발은 원천적으로 막아야 하겠지만 사정 변경으로 이행이 어렵게 된 공약이라면 속히 정리하는 게 혼란을 줄이는 길이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는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이지만 안 될 일을 밀고나가려다 보면 문제가 점점 커져 헤어나오기 없는 수렁에 빠지기 십상이다. 이는 지도자 본인은 물론 국민과 국가 전체를 위해 불행이다. 후퇴가 불가피한 경우 국민 앞에 충분히 설명하고 차선책을 마련하는 것이 책임을 지는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

4대 중증질환의 의료비 지원이나 무상보육 문제 등을 둘러싼 논란이 아직 정리되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국정 전체 방향을 고려하고 대내외 여건들을 감안하더라도 공약을 반드시 지켜야 하겠다면 재원 마련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증세가 불가피하다면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대안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