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설가 최인호의 별세에 부쳐
입력 2013-09-26 17:49
소설가 최인호씨가 25일 별세했다. 향수(享受) 68년, 늙어서도 오랫동안 작품을 쓰고 싶어 했던 고인의 뜻에 비추어 안타까운 나이다. 마지막 병실을 지켰던 허영엽 신부는 “최 선생은 잘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래도 나를 보자 눈을 마주치고 웃음을 지어주며 손을 내밀었다. 잡은 손의 힘이 너무 없어 가슴이 아팠다”고 전했다. 최인호가 누구인가. 당대 최고의 감수성을 자랑하는 소설가. 일정한 직업 없이 글을 써서 생활을 한 전업 1호 작가다. 그럼에도 누구나처럼 세상을 떠날 때는 손을 잡아줄 힘조차 없이 기진(氣盡)해서 돌아갔다. 세상에서의 모든 힘을 놓고 간다는 데 죽음의 슬픔과 숭고함이 있다는 것을 새삼 일깨운다.
그가 우리 시대에 보여준 것은 참 많다. 산업화 초기였던 1970년대 도시적 감수성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되는 ‘별들의 고향’, 영화 방송다큐멘터리와 시나리오 작품들, 1980년대 이후 뛰어들어 속속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대하 역사소설들, 그런가하면 가족들의 모습을 조명한 35년간의 연작 ‘가족’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문학사는 ‘처세술개론’ ‘술꾼’ ‘모범동화’ ‘타인의 방’ ‘개미의 탑’과 같이 경쾌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최인호 식 소설미학을 담은 일련의 작품들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얘기해 둘 것이 있다. 1970년대 이후 우리 문단은 최인호에게 진 빚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알다시피 최인호는 고교 2학년 때 신춘문예 소설에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입선해 조숙한 천재의 면모를 과시한 이후 스물여덟에 ‘별들의 고향’으로 소설 100만부 판매시대를 연 스타였다. 당시 자유계열 문단과 민족계열 문단은 그를 잡기 위해 애썼고, 양 진영에서는 서로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작품을 써줄 것을 요구했다.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나는 문단의 보호를 받으며 모범생 작가가 되어 신춘문예의 단골 심사위원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사정에 대해 고인이 들려준 회고다.
그 이후 한동안 최인호는 문단에서 ‘대중작가’로 묶여 있었다. 그를 다룬 평론은 나오지 않았다. 문단은 작가들의 자유로운 영혼을 제약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 ‘감수성의 천재’ 최인호였기에 문단의 벽을 돌파할 수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리문학은 아직도 상당부분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려 한다. 거기서 나와 더 자유로운 문학으로 나가야 한다. 한류 여러 영역 중에서 문학이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를 돌아봐야 한다.
임순만 편집인 겸 논설실장 s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