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겉옷의 신앙

입력 2013-09-26 17:37


디모데후서 4장 13절

루터교회 목사님은 이런 머리말로 설교를 시작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입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 쓴 이 편지를 읽으면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6절 이하를 보면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돼 있다”고 했습니다. 순간 가슴에 엄숙함이 다가옵니다.

아, 바울 사도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믿음으로 사투하고 계시는구나. 특히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에서 눈길이 멈췄습니다. 바로 ‘겉옷’이라는 단어에서였습니다. 우리는 유대인에게 겉옷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압니다. 낮에는 텐트가 돼 뜨거움도 막을 수 있고, 밤에는 따뜻한 이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겉옷은 추운 로마의 감옥에서 필수품이었을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됐지만 그 다음이 어렵습니다. 첫째 질문, 디모데가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가려면 짧지 않은 거리입니다. 당시 범선으로 열흘 이상은 족히 걸릴 것입니다. 그러니 디모데의 개인 짐도 상당히 많을 텐데, 이런 사정을 배려한다면 그 큰 부피인 겉옷을 가지고 오라 하지 못했을 겁니다. 둘째, 바울의 겉옷이 비싸고, 소중하고, 명품인가? 아닐 겁니다. 검소한 바울이라면, 그냥 보통 겉옷이었을 겁니다. 세 번째, 로마에는 겉옷이 없었을까? 로마는 정치 경제 문화 상업의 중심지이기에 더 좋은 겉옷이 있었을 것입니다. 넷째, 그렇다면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 중 대 사도 바울에게 그 겉옷을 사줄 사람이 없었을까? 아닐 겁니다. 충분히 사랑이 많은 로마 기독교인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 바울에게는 돈이 없었을까? 우리는 고린도후서 8장 20절에서 이렇게 읽습니다.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사도 바울의 수중에 있는 것은 조금의 선교 헌금이 아니라 거액의 선교 헌금, 즉 너무 많아서 정말 조심스럽다는 것입니다. 혹 그 선교헌금으로부터 일부를 떼어 추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겉옷을 구매 품목에 넣었더라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했을까요. 순간 주석서에는 없는 것이지만 크게 깨닫는 바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것과 자신의 것을 분명하게, 깨끗하게 구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교 헌금과 자신의 것 사이에 분명한 선을 아주 굵게 그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인데, 혹 영적으로 무지하여 내 것으로 착각하는 죄를 바울은 짓지 않으셨다는 것이지요. 이를 저는 겉옷의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목사로서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신앙입니다. 성도들의 거룩한 헌금은 헌금이요, 교회가 저에게 허락한 사례비 사이에 섞임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겉옷의 신앙을 어디에, 어떻게 적용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것이 분명 하나님의 것이 되게 하는 신앙, 겉옷의 신앙으로 삽시다. 루터교 목사님은 이렇게 설교를 마칩니다. 바울의 권면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김철환 목사 (서울베델루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