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잡학의 대가, 지구촌 지도광들을 만나다

입력 2013-09-26 17:15


맵헤드/켄 제닝스/글항아리

누구든지 읽다보면 “아∼세상엔 참 별의별 사람이 다 있구나”란 말이 절로 튀어나올 것이다. 곤충이나 새, 역사 속 인물 등 특정 대상에 ‘미친’ 사람들이 있지만 지도에 ‘이렇게까지 미친’ 사람들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기에.

제목 ‘맵헤드(Maphead)’부터 그렇다. 저자가 ‘지도’를 뜻하는 영어 단어 ‘Map’에 ‘어떤 존재·상태’를 의미하는 ‘∼head’를 붙여 못 말리는 지도광들을 지칭하기 위해 새로 만든 용어다.

그가 직접 만난 지도광들은 이런 사람들이다. 900장이 넘는 ‘성지 지도’ 수집으로 모자라 가는 곳마다 해당 지역 지도가 인쇄된 넥타이 220점을 침실 옷장 옆 주문제작한 미닫이 벽장에 고이 모셔놓은 지도 수집가가 있다. 이런 류의 지도 수집광 이야기가 다소 시시하게 느껴진다면 ‘장소 수집가’는 어떨까. 100개국 이상 여행자만이 가입할 수 있는 ‘여행자센추리클럽’, 미국의 각 주에서 가장 높은 지점을 모두 가 보자는 야심 찬 목표로 똘똘 뭉친 ‘하이포인터스클럽’. 윈터라는 예명의 탐험가(?)는 북아메리카에 있는 스타벅스 8500곳 중 20곳을 제외하고 전부 가봤다.

인공위성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알아내는 ‘GPS’ 기술의 등장은 지도광들의 활동 영역을 무한대로 넓혀줬다. 보물을 숨겨둔 위치(지오캐시) 정보를 인터넷에 올리면 GPS를 들고 찾아가 보물을 발견하는 ‘지오캐싱’이란 놀이까지 등장했다. 하루 1000개 이상의 지오캐시가 새롭게 등록되고 전 세계적으로 500만명이 참여하고 있다.

지구 표면상 180도 대척점에 빵을 올려 ‘지구 샌드위치’를 만들자고 제안한 유머작가에 호응해 실제 ‘지구 샌드위치’ 몇 개가 만들어진 적도 있다. 또 경도와 위도가 교차하는 도수합류지점을 찾아나서는 사람들, 아무도 못 알아채는 도로표지판의 서체 변화까지 귀신같이 찾아내는 ‘도로광(road geek)’까지 희한한 지도광 이야기가 끝없이 펼쳐진다.

저자는 2004년 미국의 유명한 TV퀴즈쇼 ‘제퍼디(Jeopardy)!’에 참가해 6개월간 74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뒤 ‘잡학박사’로 유명해진 인물. 무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서 잡학의 대가로 우뚝 선 뒤 괴짜와 상식에 대한 기발한 글을 써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합류했다. 발랄한 유머에 때론 진지함이 어우러진 스타일은 미국 작가 빌 브라이슨을 연상시킨다.

그가 만난 지도광을 나열하는 데 끝나지 않고 이를 통해 지도로 상징되는 위치와 공간 속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인간의 욕망을 읽어내는 통찰력을 보여준다. 지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고수’의 발견에 흥분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지도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지도가 이렇게 대단한 거야”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게 만드는 도발적인 책임이 틀림없다. 류한원 옮김.

김나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