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최인호, 癌 투병 중 68세로 별세… 겨울나그네, 별들의 고향으로 떠나다
입력 2013-09-25 22:17 수정 2013-09-26 01:42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려온 소설가 최인호씨가 25일 오후 7시10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2008년 5월 침샘암 발병 이후 투병 5년 만이다. 향년 68세.
1963년 서울고 2학년 재학 시절 단편 ‘벽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가작 입선해 문단에 얼굴을 내민 그는 1967년 연세대 영문과 재학 중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됨으로써 본격적으로 작가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장편소설 ‘별들의 고향’ ‘내 마음의 풍차’ ‘지구인’ ‘바보들의 행진’ ‘도시의 사냥꾼’ ‘겨울 나그네’ ‘깊고 푸른 밤’ 등 제목에서도 음미할 수 있듯 전통적으로 고고한 선비의 영역이었던 문학을 대중 친화적으로 평준화함으로써 중산층 및 서민층 입장을 대변하는 작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의 작품 가운데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많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 ‘바보들의 행진’ ‘상도’ ‘해신’ ‘별들의 고향’ ‘지구인’ 등이 그것.
특히 1982년작 ‘깊고 푸른 밤’은 대중성과 문학성이라는 두 측면에서 제6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영화로 제작돼 장안의 화제를 몰고 왔다. 그의 작품은 소설로서의 인기뿐만 아니라 드라마·영화·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청년문화의 대변자’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문단에서 소문난 악필(惡筆)로도 유명했다. 원고지 1200여장에 담은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탈고한 뒤 출판사 직원을 작업실로 불러 일일이 컴퓨터에 받아치게 한 일화는 유명하다. 게다가 그는 간간이 제대로 옮기고 있는지 살폈고, 교정도 봤다. 이 작업은 1주일 동안 이뤄졌다. 그는 펜을 고수하는 이유에 대해 “한 자 한 자 소설 쓰는 정성은 펜이어야 가능하다. 또 ‘나를 떠나가는 문장’에 대한 느낌은 자판과 펜이 현격히 다르다”고 말하기도 했다.
35년간 월간 ‘샘터’에 소설 ‘가족’을 연재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문학적 기록으로 평가받는 데 부족함이 없다. 한국 문학계에서 ‘가족’은 최장 연재소설로 기록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샘터 2010년 2월호를 기해 ‘가족’ 연재가 종료됐는데 이유는 애석하게도 그의 침샘암 투병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는 1975년 9월부터 ‘가족’ 연재를 시작해 34년6개월간 총 402회를 연재했다.
그가 ‘샘터’에 보낸 402회 제목은 ‘참말로 다시 일어나고 싶다’이다. 작가는 이 글에서 요절한 소설가 김유정이 죽기 열흘 전 쓴 편지를 인용하며, ‘그 편지를 읽을 때마다 나는 펑펑 울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갈 수만 있다면 가난이 릴케의 시처럼 위대한 장미꽃이 되는 불쌍한 가난뱅이의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막다른 골목으로 돌아가서 김유정의 팔에 의지해 광명을 찾고 싶다”고도 했다. 그런 가운데 투병 중인 2011년 완성한 장편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다시 한번 화제를 모았으며 그의 쾌유를 바라는 독자들의 기도가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추석 당일인 지난 19일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한 뒤 병세가 악화돼 결국 등단 50주년이 되는 해에 세상을 떠났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는 이날 천주교 신자인 최인호(세례명 베드로)씨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최인호 작가님은 자신의 아픔까지도 주님께 내어드리고 글로써 이를 고백했던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며 애도했다. 아울러 빈소에 조화를 보내 유족을 위로했다. 고인과 친분이 깊은 전임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도 애도의 메시지를 보냈다.
유족으로는 아내 황정숙씨와 딸 다혜씨, 아들 성재씨가 있다. 장례식장은 서울성모병원에 마련됐으며, 장례미사는 28일 오전 9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정 추기경의 집전으로 치러진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최인호 연보
△1945년 서울 출생 △1963년 서울고 재학 중 단편 ‘벽구멍으로’로 한국일보 신춘문예 입선 △1967년 단편 ‘견습환자’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단편 ‘2와 1/2’로 사상계 신인문학상 수상 △1972년 연세대 영문과 졸업, ‘타인의 방’으로 현대문학상 신인상 수상 △1982년 ‘깊고 푸른 밤’으로 제6회 이상문학상 수상 △1998년 ‘사랑의 기쁨’으로 제1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수상 △2006년 제5회 송산상 문화부문 수상 △2011년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로 제4회 동리문학상 수상